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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일을 줄이지 않는다 — 가짜 노동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기술이 해방하지 못한 노동의 구조에 대하여


AI는 일을 줄이지 않는다 — 가짜 노동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기술이 해방하지 못한 노동의 구조에 대하여




최초 작성일 : 2026-01-26 | 수정일 : 2026-01-26 | 조회수 : 20

AI시대의 가짜노동


기술은 언제나 인간을 해방시킨다고 약속해왔다. 더 빠르게, 더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해왔다. 증기기관이 그랬고, 전기가 그랬고, 컴퓨터와 인터넷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역사는 묘하게도 늘 다른 장면을 남겼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여유를 얻기보다는, 오히려 더 바빠졌다. 시간은 절약됐지만, 삶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이 모순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노동을 단순한 ‘생계 수단’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노동은 언제나 사회가 개인을 붙잡는 방식이었고, 조직이 자신을 정당화하는 언어였으며, 개인이 “나는 필요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심리적 장치였다. 그래서 기술이 노동을 줄이기 시작했을 때, 사회는 그 빈자리를 그대로 비워두지 못했다. 비어 있는 시간은 불안으로 읽혔고, 줄어든 필요는 무가치로 오해되었다.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가짜 노동’이다. 가짜 노동은 게으름이나 비효율의 다른 말이 아니다. 그것은 없어져도 사회가 작동하는데 지장이 없지만, 사라질 경우 조직 내부의 불안과 공백을 드러내는 일을 뜻한다. 이 개념의 뿌리는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말한 ‘헛소리 직업(Bullshit Jobs)’ 논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레이버는 사회적으로 실질적 가치를 만들지 않지만 권위, 관리, 보고 체계, 위계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직무들이 현대 사회에 대량으로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중요한 것은 이 일들이 개인의 무능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들은 기술 발전으로 ‘필요 노동’이 줄어든 이후, 조직과 시스템이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구조적 산물이었다. 일은 줄었지만, ‘일하고 있다는 상태’를 유지해야 할 필요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사회는 새로운 일을 만들어냈고, 그 일은 점점 실제 성과와 분리되기 시작했다. 보고서를 쓰기 위한 보고서, 회의를 하기 위한 회의, 관리하기 위한 관리, 그리고 성과를 증명하기 위한 형식적 성과들. 여기서 중요한 전환이 일어난다. 노동은 더 이상 결과를 만들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의식이 된다. 이 구조 속에서 기술은 해방자가 아니라 촉매제가 된다. 기술은 일을 더 빠르게 처리해주지만, 그 덕분에 조직은 더 많은 ‘형식’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제 인공지능이 그 자리에 들어선다. AI는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문서를 만들고, 보고서를 정리하고, 요약하고, 분석한다. 겉으로 보면 효율의 극대화다. 그러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 효율은 여유로 전환되지 않는다. 대신 더 많은 문서, 더 많은 중간 보고, 더 많은 관리 단계로 확장된다.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이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AI가 만든 일을 또 다른 AI가 읽고, 그 결과를 사람이 확인하는 장면이 반복된다. 주체만 바뀌었을 뿐, 가짜 노동의 구조는 그대로 유지된다. 이때 노동의 문제는 실업이 아니다. 오히려 의미의 붕괴다.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다. 그러나 왜 바쁜지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성과는 있는데, 성취감은 없다. 일은 많지만, 끝난 느낌은 없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번아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증상이 된다. 피로는 의지의 부족이 아니라 설계의 결과가 된다. 기술은 점점 더 똑똑해지지만, 조직은 그 기술을 이용해 자신의 오래된 불안을 덮는 데에만 사용한다. 그래서 어떤 사회에서는 기술 혁신이 곧바로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정교한 바쁨을 만들어낼 뿐이다. 이 모든 생각을 따라오다 보면, 최근 한 인터뷰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AI가 일을 없애기보다는, 그 빈자리를 또 다른 형태의 쓸모없는 일로 채울 수 있다는 경고.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받아들이는 조직의 설계라는 지적. 그래서 오늘, “AI가 업무를 효율화하더라도 가짜 노동은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덴마크 인류학자의 말이 유독 오래 남는다. -------------- "AI가 업무 효율화?...또 다른 \'가짜 노동'이 빈자리 채울 수도" [덴마크 인류학자 '데니스 뇌르마르크' 인터뷰] (조선일보 2026.01.22)

Tags  #가짜노동  #AI와노동  #노동의의미  #기술과사회  #이론에세이  #번아웃구조  #조직설계  #미래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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