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6-01-19 | 수정일 : 2026-01-19 | 조회수 : 16 |

"아빠, 출근하면 말 걸지 마세요"...55세 인턴에게 아들이 한 충고 (조선일보 2026.01.16.) ------------------ 아침에 넥타이를 매는 손이 예전보다 조금 느려졌다는 걸 본인은 알고 있었을까. 55세. ‘인턴’이라는 명찰을 달고 다시 회사로 들어가는 날. 아들은 출근길에 말했다고 한다. “아빠, 회사 가면 말 많이 하지 마세요.” 충고라기보다는 생활 요령에 가까운 말이었을 것이다. 요즘 회사에서 말은 조심해서 해야 하고, 의견은 요청받았을 때만 내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걸 아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 테니까. 이 장면이 오래 남는다. 아빠는 한때 팀장이었고, 결정을 내리던 사람이었고, 회의실에서 말을 끊지 않아도 사람들이 고개를 들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출근 전에 ‘말을 아끼라’는 조언을 듣는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누가 더 현명한지 판단하고 싶지 않았다. 아들이 옳고, 아빠가 틀렸다고도 그 반대라고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이 사회가 한 사람에게 너무 급격한 표정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인생 2막”이라는 말을 쓴다. 왠지 희망적이고, 새로운 도전처럼 들린다. 하지만 실제로 그 2막은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시 낮아지는 이야기에 가깝다. 직함이 사라지고, 호칭이 바뀌고, 의견의 무게가 달라진다. 그 변화는 교육으로 준비하기 어렵다. 아빠는 회사에서 아들의 충고를 떠올렸을 것이다. 말을 줄이고, 표정을 관리하고, 예전의 자신을 조심스럽게 접어두는 일. 그건 단순히 적응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재배치하는 일이다. 이 사회는 종종 말한다. “배우면 된다.” “마음가짐의 문제다.” “요즘은 나이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 문장들 사이에는 말해지지 않는 전제가 하나 있다. ‘너는 이미 내려와 있어야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버지 세대의 미담으로 소비하고 싶지 않다. 또 중년의 노력담으로 포장하고 싶지도 않다. 오히려 이 장면은 우리 모두에게 닿아 있다. 지금은 조언하는 쪽에 서 있지만, 언젠가는 조언을 듣는 쪽에 서게 될 사람들. 55세 인턴의 첫 출근은 용기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조용한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나이가 들었을 때 어떤 말투와 어떤 표정을 허락받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아들은 현실을 말했고, 아빠는 그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 장면이 아름답다고만 말하기엔 조금 마음이 쓰인다. 이 사회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말은 왜 이렇게 조심스러워야 하는 걸까.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은 아빠의 얼굴보다 아들의 말을 더 오래 떠올릴 것이다. 그 말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미 그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인생 2막은 다시 서는 일이 아니라, 다시 낮아지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