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6-02-04 | 수정일 : 2026-02-04 | 조회수 : 3 |
‘문송’과 ‘컴송’은 전공의 실패가 아니라, 사람이 가진 지식을 시간당 효율로만 평가하는 사회의 구조적 신호다.

"문송합니다, 컴송합니다." - 취업 불패 신화를 써 내려가던 컴퓨터공학도들마저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 것이다. - 공대생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이유와 문과생이 느끼는 불안의 뿌리는 하나로 연결된다 (매일경제 2026.02.03) "이제는 '컴송'합니다… 고개숙인 취업왕 컴공" - AI 도입 이후 개발자 채용 줄어 - 주요 대학서 컴공과 취업률 감소 (조선일보 2026.02.03) '문송' 이어 '컴송', 그 다음은… - ‘법송’(법대라서 죄송) ‘의송’(의대라서 죄송) 등의 신조어가 계속 등장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국경제 2026.02.04) ---------------------- ‘문송’이라는 말이 유행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농담처럼 넘겼다.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의 자조, 혹은 취업 시장의 냉혹함을 표현한 신조어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이제 ‘컴송’이라는 단어가 뒤따라 붙는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용없다”는 말이다. 이쯤 되면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왜 특정 전공이 계속해서 ‘쓸모없다’는 이름으로 교체되고 있는가?
최근 언론은 ‘문송’에 이어 ‘컴송’이라는 표현을 꺼내 들었다. 한때 가장 확실한 선택처럼 보였던 컴퓨터공학조차 AI의 급속한 발전, 자동화, 생산성 도구의 확산 앞에서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는 기술 변화의 속도 문제처럼 보인다. 어제의 유망 전공이 오늘의 평범한 기술이 되고, 오늘의 필수 역량이 내일의 기본값이 되는 현상. 하지만 이 흐름을 단순히 기술 진화의 결과로만 읽는다면 가장 중요한 지점을 놓치게 된다.
1️⃣ 문제는 전공이 아니라 ‘능력의 유통기한’이다 (Skill Obsolescence) 노동경제학에서 말하는 기술 진부화(Skill Obsolescence)는 개인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의 기준이 더 빠르게 이동할 때 발생한다. ‘문송’도, ‘컴송’도 개인의 선택 오류라기보다 능력의 유통기한이 비정상적으로 짧아진 사회의 증상에 가깝다. 2️⃣ 우리는 ‘문제 해결자’를 원하면서도, ‘문제 수행자’만 평가한다 (Taskification of Work) 기업과 사회는 말로는 늘 이렇게 말한다. “창의적 인재”, “문제 해결 능력”, “융합형 사고”. 그러나 실제 보상 체계는 다르다. 측정 가능한 기술, 즉각 투입 가능한 스킬, 지금 당장 결과를 내는 능력만을 평가한다. 이 과정에서 학문은 ‘사고의 훈련’이 아니라 즉시 소모 가능한 기능 묶음으로 취급된다. 전공은 더 이상 정체성이 아니라, 가격이 매겨진 부품이 된다. 3️⃣ ‘쓸모없음’이라는 낙인은 사회가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할 때 등장한다 (Responsibilization) 사회가 구조적으로 불안정해질수록 그 불안을 설명하는 언어는 개인에게 향한다. “전공 선택을 잘못했다.” “미래를 읽지 못했다.” “변화에 대비하지 못했다.” 이때 ‘문송’과 ‘컴송’은 현실 설명이 아니라 책임 전가의 언어로 기능한다. 문제는 시장의 속도인데, 비난은 개인의 판단으로 돌아간다. 4️⃣ 결국 이 현상은 ‘지식의 가치’가 아니라 ‘시간의 가치’에 대한 판단이다 지금 사회가 묻는 질문은 이것이다. “이 지식은 얼마나 빨리 돈이 되는가?” 그 질문 앞에서 인문학도, 컴퓨터공학도, 다른 어떤 전공도 안전하지 않다. 시간당 효율로 환산되지 않는 지식은 언제든 ‘송’이라는 이름으로 호출될 수 있다.
‘문송’ 다음에 ‘컴송’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특정 전공이 몰락했다는 신호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신호는 이것이다. 이 사회는 점점 더 빠르게 “쓸모없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속도는 개인이 아무리 앞서 준비해도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어떤 전공이 살아남을까?”가 아니라, “우리는 왜 계속해서 사람의 가치를 전공으로 줄 세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