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6-01-14 | 수정일 : 2026-01-14 | 조회수 : 18 |

“아들 부모가 딸 부모보다 치매 더 잘 걸린다” 왜?…연구 결과 ‘충격 (서울신문 2026.01.13 ) "아들을 둔 부모가 딸을 둔 부모보다 치매에 더 잘 걸린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영국 데일리메일 등에 따르면 중국 허하이대 연구진은 딸을 둔 노년 부모들이 아들을 둔 부모보다 더 좋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 오늘 아침, 이런 기사를 하나 읽었다. “아들을 둔 부모가 딸을 둔 부모보다 치매에 더 잘 걸린다.” 처음엔 그냥 건강 뉴스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문장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치매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 같았기 때문이다. 딸은 부모에게 자주 연락하고, 감정적인 대화를 나누고,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를 이어간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가 덜 고립되고, 그 덕분에 인지 기능이 오래 유지된다는 설명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곧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늙어서 남는 것은 재산도 아니고 집도 아니고 성공도 아니고 누군가의 안부 한마디가 아닐까. 그리고 문득 조금 서늘해졌다. 요즘은 혼자가 편하다고들 말한다. 결혼도 선택, 아이도 선택, 가족도 선택.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시대가 바뀌었고, 삶의 형태도 달라졌으니까. 그런데 가끔 아주 단순한 질문이 떠오른다. 그렇게 선택한 혼자는, 늙어서도 괜찮을까? 지금은 젊고, 친구도 있고, 일도 있고,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몇십 년 뒤 퇴직하고, 몸이 느려지고, 세상이 점점 멀어질 때, 그때 내 하루를 누가 물어줄까. 동물도 무리를 만든다. 인간은 더 복잡한 무리를 만들어왔다. 가족, 친척, 이웃, 공동체.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말했다. “인간은 ‘나-너’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I and Thou)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 관계를 스스로 해체하고 있다. 편하다는 이유로. 자유롭다는 이유로. 그 선택이 혹시 미래의 고독과 맞바꾼 자유는 아닐까. 이 기사는 치매를 말하지만 나는 다른 문장을 읽었다. “끝까지 나와 연결된 사람이 있는가.” 어쩌면 이 질문 하나가 우리 사회가 아직 답하지 못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답을 모르겠다. 다만 오늘 이 기사를 읽고 잠깐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누구와 함께 늙게 될까. 그리고 그 질문이 조금은 조용히 마음을 건드린다. “혼자는 선택일 수 있지만, 고립은 선택의 결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