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6-01-11 | 수정일 : 2026-01-11 | 조회수 : 18 |

트럼프 “좋아하든 말든…그린란드, 어떻게든 가질 것” (서울신문 2026-01-10) ------------------------ “좋아하든 말든, 그린란드는 어떻게든 가질 것이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 내용보다 말의 방식에 먼저 멈춰 섰다. 정책이 아니라 태도였고, 계획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외교의 언어라기보다는 소유를 말하는 사람의 어투에 가까웠다. 언제부터 세계는 이렇게 쉽게 “가질 수 있다”는 말로 설명되기 시작했을까. 그린란드는 섬이고, 땅이며, 전략적 요충지이고, 자원이다. 뉴스는 그렇게 정리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기후가 있고,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 모든 것을 한 문장으로 덮어버리는 언어 앞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분노보다 불안을 느꼈다. 이 말이 실현되느냐보다, 이 말이 아무렇지 않게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국제 질서라는 말은 언제부터 이렇게 가벼워졌을까. 국경은 협상의 대상이 되고, 주권은 거래의 조건처럼 언급된다. 힘을 가진 쪽이 말하면, 말이 먼저 현실이 되는 세계. 이 장면을 보며 나는 오래된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역사는 언제나 “설마 저렇게까지 하겠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무너진 순간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이 말이 위험한 이유는 그린란드 때문만은 아니다. 이 언어가 허용되는 순간, 다른 땅, 다른 나라, 다른 경계도 같은 문장 안으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든 말든.” 이 문장은 상대를 설득하지 않는다. 존재를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힘의 우위를 전제로 한 일방적인 통보다. 세계는 지금 이런 언어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전쟁은 다시 설명되고, 점령은 전략으로 포장되고, 힘의 논리는 현실주의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 과정에서 국제법과 원칙은 언제나 뒤로 밀린다. 시간이 없어서, 상황이 급해서, 현실이 그렇다며. 나는 이 뉴스를 보며 한 가지 질문에서 오래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말을 듣고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을까. 분노하지도, 놀라지도 않고 그저 “그 사람다운 말”이라며 다음 뉴스로 넘어가게 되었을까. 이 글은 누구를 비난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정답을 제시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런 언어가 공기처럼 떠다니는 시대에 우리가 느껴야 할 불편함까지 함께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을 뿐이다. 땅은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세계는 그렇게 소유되는 것이 아니기를. 그리고 우리가 그 사실을 아직 완전히 잊지는 않았기를. 그렇게 믿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