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6-01-08 | 수정일 : 2026-01-08 | 조회수 : 25 |

미국 백악관이 올린 'FAFO' 무슨 뜻? "까불지 마, 까불면 다쳐" (JTBC 2026. 1. 5.) FAFO(까불면 죽는다). (조선일보 2026. 1. 6) ------------------ 말이 이렇게 멀리 가도 되는 걸까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는 웃고 넘길 수 있는 말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온라인 댓글에서, 사소한 다툼의 끝자락에서 농담 반, 경고 반으로 쓰이던 말. “해보면 알게 될 거야” “선 넘으면 다친다” 그 정도의 뉘앙스였다. 그래서 이 말이 국제 뉴스의 제목에 등장했을 때, 처음 든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어색함이었다. 이상하다는 느낌은 말의 뜻 때문이 아니었다. 말이 놓인 자리가 너무 컸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거리 조절을 위해 쓰이던 언어가 국가와 국가 사이, 군사력과 외교의 맥락 속에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었다. 그 순간, 말은 더 이상 농담도, 밈도 아니었다. 우리는 흔히 위협은 늘 거친 언어로 온다고 생각한다. 선전포고, 경고 성명, 엄숙한 문장과 단단한 표현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위협은 점점 쉬운 말을 입는다. 가볍게, 짧게, 마치 설명이 필요 없다는 듯. 그래서 더 멈칫하게 된다. 이 말이 불편한 이유는 폭력적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일상적이어서다. 친구 사이에서 쓰이던 말이 국가의 입에서 나올 때, 그 간극을 메워주는 설명은 없다. 우리는 그저 “요즘은 이런 말도 쓰나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그렇게 언어는 조용히 자리를 옮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힘은 왜 점점 어려운 말 대신 쉬운 말을 선택할까. 위협은 왜 엄숙함 대신 농담에 가까운 옷을 입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 변화에 이렇게 쉽게 익숙해져도 괜찮을까. 어쩌면 이 말이 던지는 진짜 질문은 정치도, 외교도 아닐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 어떤 말들이 공적인 폭력의 언어로 이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이동을 아무 일 없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 언어는 늘 관계를 반영한다. 누가 누구에게 말하는지, 어떤 힘의 차이가 있는지. 그래서 말은 칼보다 먼저 관계를 바꾸고, 총보다 먼저 긴장을 만든다. 말이 가벼워질수록 그 안에 담긴 힘은 오히려 더 무거워질 수 있다. 이 뉴스가 마음에 오래 남는 이유는 위협의 수위 때문이 아니다. 사적인 말이 공적인 폭력의 언어가 되는 순간을 우리가 너무 차분하게 지나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말이 이렇게 멀리 가도 되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너무 쉽게 멀어지게 두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