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6-01-07 | 수정일 : 2026-01-07 | 조회수 : 19 |

"점심값이 두려운 직장인들 따릉이 타고 전통시장 간다," (조선일보 2026. 1. 5.) “한 끼 먹는데 회사 앞은 2만원, 시장에선 4000원이면 해결돼” "옆회사 구내식당도 매일 긴줄" ------------------- 점심시간이 되면 예전처럼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머릿속이 먼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요즘 점심시간에는 계산기를 꺼내 들지 않는다. 대신 머릿속에서 숫자가 먼저 켜진다. 이번 달 카드값은 얼마나 남았지. 휴대폰 요금은 왜 또 올랐지. 아이 학원비 빠져나가는 날짜가 다음 주였던가. 집에서는 아내가 시장에서 반찬값을 하나하나 따져보고 있을 것이다. 한 봉지를 더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 손동작까지 괜히 또렷하게 떠오른다. 점심을 고르는 이 시간은 나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다. 가족 전체의 생활비 위에 놓인 시간이다. 회사 앞 식당에 들어서기 전, 메뉴판의 숫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2만원. 한 끼에 2만원이라는 말이 이제는 과장이 아니다. 예전 같으면 회식 자리에서나 나왔을 금액이 아무렇지 않게 점심값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움직인다. 회사 표시가 달린 목걸이를 셔츠 안으로 살짝 넣고, 따릉이를 타고 사무실 밀집 지역을 벗어난다. 전통시장에 가면 4000원이면 한 끼가 해결된다. 문제는 싸서가 아니다. 이동해야만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줄 서는 풍경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맛집 앞에 줄이 섰다. 지금은 구내식당 앞에 줄이 선다. 그 줄에는 기대보다 안도감이 섞여 있다. “그래도 여기면 덜 나오겠지.” 점심시간은 더 이상 즐거운 선택의 시간이 아니다. 방어의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점심을 포기한 게 아니다. 점심에 담겨 있던 여유와 당연함을 내려놓았을 뿐이다. 한때는 회사 목걸이를 걸고 회사 근처 번듯한 식당에 거리낌 없이 들어갔다. 그 시절에는 점심이 하루의 쉼표였고, 잠깐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으며, 내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중간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같은 목걸이를 걸고 있어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달라졌다. 전통시장에서 먹는 점심은 정겹고 따뜻한 풍경으로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요즘의 시장행 점심은 추억이 아니다. 시간을 계산하고 이동 거리를 재고 체력을 쓰면서까지 가는 선택 이건 낭만이 아니라 생활의 조정이다. 점심이 바뀌면 삶의 긴장도 가장 먼저 바뀐다. 주거비나 교육비는 크고 멀다. 당장 바꾸기 어렵다. 하지만 점심은 다르다. 매일 반복되고, 매일 체감된다. 그래서 점심이 달라지면 삶의 감각이 먼저 달라진다. 소비는 조심스러워지고, 선택은 계산적으로 변하고, 하루는 조금 더 무거워진다. 이 변화는 아직 통계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의 얼굴에는 이미 나타나 있다. 점심값이 두려워졌다는 말은 단순한 물가 이야기가 아니다. 그 말 속에는 이런 마음이 담겨 있다. 하루를 살아내는 데 이렇게 많은 계산이 필요해진 세상에 대한 조용한 피로. 우리는 밥을 덜 먹고 싶은 게 아니다. 그저 밥 한 끼 앞에서 이렇게까지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절을 조금 그리워할 뿐이다. 점심은 여전히 하루의 가운데에 있다. 하지만 그 위에 얹힌 마음의 무게는 이전과 같지 않다. "점심이 달라진 게 아니다. 점심을 감당하는 삶이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