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6-01-02 | 수정일 : 2026-01-02 | 조회수 : 18 |

"나 잡아봐라" 노인 조롱한 초등생들...홍대역 지하상가서 벌어진 일 (조선일보 2025.12.31) " 고가의 명품 패딩을 입은 초등학생 무리가 지하상가에서 노인을 조롱하며 약 올리다 제지당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대한민국은 한 세대의 희생 위에 성장한 사회다. 그 안에서 노인을 조롱하는 문화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 --------------- 홍대역 지하상가에서 촬영된 짧은 영상 하나가 많은 사람을 멈춰 세웠습니다. 명품 패딩을 입은 초등학생들이 노인을 향해 “나 잡아봐라”라며 웃고 도망치는 장면. 그 웃음은 가볍고, 장면은 짧았지만, 마음에 남은 감정은 오래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장면을 보며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 아이들 문제다.” “가정교육이 무너졌다.” “예의가 없다.” 하지만 정말 그 말들로 이 장면은 설명될까요.그 웃음은 어디에서 배운 것일까 아이들은 사회의 공기를 그대로 들이마십니다. 무엇이 조롱의 대상이 되는지, 누가 약자인지, 누구를 함부로 대해도 되는지를 아이들은 교과서가 아니라 풍경에서 배웁니다. 노인은 언제부터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느리고, 불편하고, 비켜야 할 존재’가 되었을까요. 지하철에서, 병원 대기실에서, 온라인 댓글에서,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노인은 늘 “나중에”, “어쩔 수 없이”, “부담이 되는 쪽”으로 밀려왔습니다. 아이들이 그 질서를 흉내 냈을 뿐이라면, 그 책임은 과연 아이들에게만 있을까요. 이 사회는 분명히 한 세대의 장시간 노동, 낮은 임금, 말하지 못한 포기로 성장해 왔습니다. 그 세대는 “우리는 힘들어도 너희는 괜찮을 거야”라는 말을 수없이 삼키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희생의 결과물 앞에서 그들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장면이 불편한 이유는 아이들의 행동이 잔인해서만이 아닙니다. 그 장면 속에서 사회 전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모습이 함께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었을까 아이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보여주었을까요. 성공은 빠른 속도라고, 가치는 비싼 옷이라고, 느린 사람은 뒤처진 사람이라고, 약자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피해야 할 존재라고 무언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흘려보내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이 장면은 교육의 실패라기보다 사회적 가치 전달의 결과처럼 보입니다. 노인을 조롱하는 문화는 갑자기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존중이 사라진 사회에서, 속도만 남은 도시에서, 효율이 인간 위에 올라선 구조에서 천천히 배양됩니다. 아이들은 잔인해서 웃은 것이 아니라, 웃어도 괜찮은 분위기를 감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게 됩니다. 이 사회에서 늙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약해진다는 것은 어떤 위치를 뜻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아이들이 노인을 조롱한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오래전부터 존엄을 가볍게 다뤄왔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