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6-01-02 | 수정일 : 2026-01-02 | 조회수 : 21 |
"인공지능(AI)이 보편화되면서 유럽에서는 은행원들의 일자리를 상당수 잠식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2026.1.1) ------------------------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유럽 은행권에서 약 21만2000명, 전체 인력의 10%가 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감원의 중심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창구 직원이 아니라, 은행 내부의 백오피스(중앙 서비스 부서)라는 사실입니다. AI 도입과 디지털 전환으로 • 동일 업무를 30% 적은 인력으로 처리할 수 있고 • 대출 심사, 준법 감시, 내부 보고 업무의 처리 속도 역시 30% 이상 단축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겉으로 보면 이는 기술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효율화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숫자들은 단순한 구조조정 이상의 신호를 담고 있습니다.

백오피스가 먼저였을 뿐, 다음은 화이트칼라 전체다 이번 감원의 핵심은 누가 먼저 사라지느냐가 아니라 왜 그들이 먼저 선택되었느냐에 있습니다. 백오피스의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고객을 직접 마주하지 않는다 성과가 숫자·문서·프로세스로 환원된다 판단의 과정은 복잡하지만, 결과는 표준화 가능하다 AI가 가장 먼저 대체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설명 가능한 노동, 모델링 가능한 판단이었습니다. 이 구조는 은행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이미 회계, 인사, 법무 보조, 리서치, 마케팅 기획, 언론·교육·컨설팅 영역까지 화이트칼라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잘했는가?”에서 “굳이 사람이 필요한가?”로 화이트칼라 노동은 오랫동안 자신을 이렇게 정의해 왔습니다. • 지식노동은 대체되기 어렵다 • 판단과 책임은 인간의 영역이다 • 자동화는 단순 반복 업무의 문제다 하지만 AI는 이 전제를 바꿉니다. 판단은 확률 계산으로, 책임은 시스템 설계로, 전문성은 속도와 비용으로 환산됩니다. 노동의 질문은 더 이상 “이 사람이 잘하는가?”가 아니라 “이 일을 사람이 해야 할 이유가 남아 있는가?”로 이동합니다. 이 변화가 불러오는 이론적 장면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오래된 경고들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막스 베버는 합리화(rationalization)를 효율의 진보가 아니라 의미가 제거되는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목적은 남고, 이유는 사라지는 사회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행정적 노동이 세분화될수록 책임은 개인이 아닌 구조 속으로 증발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쓸모없다’고 불리던 많은 일들이 사라진 뒤에야 사회적 완충재였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지금의 AI 전환은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는 장면입니다.
화이트칼라의 불안은 실업 통계처럼 크게 터지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스며듭니다. 역할은 남아 있지만 결정권은 옮겨가고 책임은 유지되지만 판단은 자동화되며 자리는 있지만, 필요성은 불분명해집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직 해고되지 않았음에도 이미 이렇게 느끼기 시작합니다. “나는 아직 일하고 있지만, 이 일이 나를 필요로 하는지는 모르겠다.” 이 불안은 지표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실업률에도, 고용률에도, 아직은 반영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늦게 오고, 더 깊게 남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 질문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효율이 높아진 사회에서 왜 일하는 사람의 불안은 줄지 않을까 재교육은 해답일까, 아니면 노동의 정의가 바뀌는 신호일까 AI가 판단을 대신하는 순간, 책임은 과연 누구의 몫으로 남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질문. 우리는 그동안 ‘쓸모 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일해온 걸까, 아니면 ‘대체 불가능하다’는 착각 속에 머물러 있었던 걸까. "백오피스는 시작이었고, 화이트칼라는 과정이며,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노동이 다음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