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5-12-16 | 수정일 : 2025-12-16 | 조회수 : |
Daily News Essay는 뉴스를 요약하지 않습니다. 이미 알려진 사실을 반복하지 않고, 그 뉴스가 내 일상에 남기는 감정과 균열을 짧은 에세이로 기록합니다. 이 글은 해설도, 사설도 아닙니다. 숫자와 주장 대신, 우리가 그 뉴스를 읽으며 느꼈지만 말로 옮기지 못했던 감각에 집중합니다.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이 뉴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에서 출발해, 오늘 하루의 생각 하나를 남기는 것이 이 글의 목적입니다.

한국, AI 자동 생성 콘텐츠 소비·생산 모두 상위권(조선일보, 12월 15일) ‘AI 슬롭’ 확산… 플랫폼 신뢰도 하락 우려(뉴욕타임스, 12월 14일) 숏폼 과잉 시대, 주의력은 어떻게 소모되는가(가디언, 12월 13일) --------------------------- 요즘 인터넷에는 끝없이 비슷한 영상과 글이 쏟아진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 조금 바꾼 자극, 금방 소비되고 사라지는 콘텐츠들. 이것을 사람들은 ‘AI 슬롭’이라 부른다. 놀라운 점은 한국이 이 슬롭을 가장 많이 보고, 만들고, 퍼뜨리는 나라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기술이 앞서 있어서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문제는 기술보다 속도에 대한 집착에 가깝다. 우리는 오래 기다리는 데 익숙하지 않다. 빠른 반응, 즉각적인 결과, 지금 당장 재미있는 것. AI는 이 욕망을 정확히 충족시킨다. 깊이를 만들지 않아도, 형태만 있으면 충분한 콘텐츠. 그래서 슬롭은 넘쳐난다. 이 현상은 단순한 취향 문제가 아니다. 한병철(Byung-Chul Han)이 말한 ‘피로사회’의 또 다른 얼굴에 가깝다. 사람들은 창작해서 지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쉽게 만들어버릴 수 있어서 지친다. 노력 없는 생산은 의미 없는 과잉을 낳는다. 그래서 AI 슬롭은 콘텐츠의 타락이 아니라 주의력의 고갈을 보여준다. 우리는 더 이상 “이게 왜 필요한가”를 묻지 않는다. “얼마나 빨리 나왔는가”만 본다. 속도가 판단을 대신하는 순간, 의미는 가장 먼저 탈락한다. 이 뉴스가 불편한 이유는 이 구조의 중심에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도, 알고리즘도 결국 우리의 선택을 따라 움직인다. AI 슬롭은 외부의 침입이 아니라 우리 취향의 거울이다. 그래서 이 문제의 해결은 기술 규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조금 느리게 보고, 조금 덜 소비하고, 조금 더 오래 머무는 선택. 그 사소한 태도 변화가 없다면 슬롭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우리는 묻게 된다. AI가 너무 많아진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너무 빨리 지루해지는 존재가 된 것인지. 이 질문을 피하는 한, 의미 없는 것들은 계속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