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6-02-07 | 수정일 : 2026-02-07 | 조회수 : 5 |
기술은 인간의 일을 대체해왔지만, 인간의 역할까지 대체한 적은 없었다.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예술은 늘 위기를 맞았다. 사진이 등장했을 때 회화는 끝났다고 했고, 녹음 기술이 생겼을 때 음악은 사라질 거라 했다. 인쇄술 이후 시는 쓸모를 잃을 것이라는 예언도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예술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역할이 바뀌었다. 경제학과 기술사에서 이 현상은 반복적으로 설명된다. 기술은 일(Task)을 대체하지만, 역할(Role)을 전부 대체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바로 Task Displacement와 Task Transformation의 구분이다. 기술은 특정 작업을 밀어내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의 역할은 재구성된다. 여기에 보완성 이론(Complementarity Theory)이 더해진다. 기술은 인간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잘하는 영역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AI는 계산, 생성, 변형을 빠르게 수행한다. 하지만 무엇이 의미 있는지, 왜 이 표현이 필요한지,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인간의 판단 영역이다. 인지과학에서는 이를 확장된 인지(Extended Cognition)라고 부른다. 도구는 사고를 대체하지 않는다. 사고의 경계를 넓힐 뿐이다. 연필이 사고를 없애지 않았듯, AI 역시 인간의 사고를 삭제하지는 않는다. 다만 조건이 있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는 주체로 남아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예술과 인문학은 기술 앞에서 늘 위기를 겪지만, 동시에 가장 늦게 사라지는 영역이 된다. 기술은 표현을 바꾸지만, 의미를 묻는 질문까지 대신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동양화과에서 AI 이미지를 배우고 국문과에서 시를 AI와 함께 다루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AI 그림 배우는 동양화과, 詩에 활용 국문과… 생존 위한 ‘공존’」 (동아일보, 2026.02.05) 이것은 생존을 위한 후퇴가 아니라, 역할을 다시 정의하려는 가장 오래된 방식의 대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