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5-12-13 | 수정일 : 2025-12-13 | 조회수 : |
Daily News Essay는 뉴스를 요약하지 않습니다. 이미 알려진 사실을 반복하지 않고, 그 뉴스가 내 일상에 남기는 감정과 균열을 짧은 에세이로 기록합니다. 이 글은 해설도, 사설도 아닙니다. 숫자와 주장 대신, 우리가 그 뉴스를 읽으며 느꼈지만 말로 옮기지 못했던 감각에 집중합니다.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이 뉴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에서 출발해, 오늘 하루의 생각 하나를 남기는 것이 이 글의 목적입니다.

「신혼부부 95만, 또 ‘역대 최저’…4쌍 중 1쌍은 빚 3억 이상」(한국일보, 2025.12.12) 「청년층 결혼 포기 이유 1위 ‘주거·부채 부담’」 (서울신문, 2025.12) 「혼인율 하락, 가치관보다 구조의 문제」 (한겨레, 2025.11) 「신혼부부 대출 의존도 역대 최고」 (연합뉴스, 2025.12) ----------------------- 결혼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배웠다. 함께 살 집을 꾸리고, 서로의 하루를 나누며, 조금씩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 그러나 요즘 결혼의 시작은 축하보다 계산에 가깝다. 얼마를 빌려야 하고, 얼마를 갚아야 하며,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가 먼저 등장한다. 신혼부부 수는 줄어들고, 빚은 늘었다. 네 쌍 중 한 쌍은 결혼과 동시에 3억 원 이상의 부채를 안는다. 이 숫자는 단순한 재무 지표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선택지가 처음부터 얼마나 좁아지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집을 마련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마련하려면 빚을 져야 한다. 이 구조 속에서 결혼은 사랑의 문제라기보다 위험 관리의 문제가 된다. 그래서 결혼을 미루는 선택은 책임 회피가 아니라,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합리적인 판단처럼 느껴진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계급을 소득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가능성의 차이로 설명했다. 신혼부부의 부채는 현재의 소비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미리 결정한다. 아이, 이직, 휴식 같은 단어들은 처음부터 가계부에서 삭제된다. 그래서 요즘 결혼은 삶을 확장하는 사건이 아니라, 삶을 조심스럽게 축소하는 선택이 된다. 사랑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사랑을 시작하기 위한 조건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이 뉴스가 씁쓸한 이유는 분명하다. 사람들이 사랑을 덜 믿게 된 것이 아니라, 사랑을 시작하기엔 사회가 너무 비싸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시작의 순간에 이토록 많은 짐을 먼저 지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