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5-12-12 | 수정일 : 2025-12-12 | 조회수 : |

“한국 청년 연구자들, 일본·대만 반도체 기업으로 이동 가속”(한국일보 · 2025.12.10) “아시아 반도체 허브 경쟁… 대만·싱가포르 ‘즉시 투입형 인재’ 흡수”(니혼게이자이신문 · 2025.12.09) “국내 이공계 박사, 절반 이상 해외 취업 고려”(연합뉴스 · 2025.12.11) ----------------------- 초봉이 특별히 높은 것도 아니고, 조건이 파격적인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K-인재 98명이 면접 한 번으로 대만을 택했다는 소식은 숫자보다 방향을 말해준다. 지금 이 이동은 연봉 경쟁의 결과가 아니라 기회의 방향 전환이다. 대만과 일본, 싱가포르는 공통된 전략을 쓴다.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재에게, 바로 실험할 수 있는 자리를 준다.” 반면 한국의 채용은 여전히 준비와 검증에 많은 시간을 쓴다. 인재는 대기하고, 프로젝트는 늦어진다. 그 사이 기회는 다른 나라로 이동한다. 노동경제학에서는 이를 ‘기회 접근성 격차(opportunity accessibility gap)’라고 부른다. 사람의 능력은 비슷해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점과 환경은 다르다. 대만이 매력적인 이유는 급여가 아니라, “지금 이 기술을 써볼 수 있다”는 즉시성이다. 한 지원자는 이렇게 말했다. “거기선 바로 시작할 수 있었어요.” 이 문장은 청년 이동의 본질을 드러낸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사람은 다른 곳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진다. 이 흐름은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구조의 결과다. 인재는 국가에 충성하지 않는다. 성장 곡선에 충성한다. 배울 수 있고, 실패할 수 있고, 다시 시도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이 현상은 ‘인재 유출’이라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유출은 빠져나간다는 뜻이지만, 지금의 이동은 끌려간 것이 아니라 선택된 이동이다. 이 뉴스는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지금 한국은 인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조금 더 기다릴 수 있나요?”인가, 아니면 “지금 바로 시작해도 됩니다”인가. 기회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작할 수 있는 자리로 증명된다. 사람은 나라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능성이 가장 빠르게 자라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지금 그 방향이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