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5-12-11 | 수정일 : 2025-12-11 | 조회수 : |

AI 영상이 만들어낸 허위·과장광고가 퇴출되고, 정부가 ‘AI 제작 마크’ 표시를 의무화했다는 소식은 단순한 규제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핵심은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는 속도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 감각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AI는 이제 ‘지어낸 사실’을 진짜처럼 보이게 만들 뿐 아니라,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느끼게 만든다. 빛의 결, 피부의 질감, 목소리의 떨림까지 자동으로 복원되는 화면 앞에서 인간의 오감을 속이는 일은 전보다 훨씬 쉬워졌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를 ‘현실감 왜곡(distorted reality sense)’이라 부른다. 사람은 진실을 믿는 존재가 아니라, 그럴듯함을 믿는 존재다. 최근 유튜브에서 활개치는 영상들은 이 현상을 더 분명히 보여준다. 약효가 증명되지 않은 식품을 miracle product처럼 소개하고, 출처 없는 질병 정보를 전문가 말투로 전달하며, 의사 가운만 입은 사람이 병원을 홍보하거나 치료법을 권한다. ‘쇠비자’처럼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정보도 알고리즘에 실려 순식간에 대중에게 도달한다. 이 영상들이 위험한 이유는 가짜라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는 부분을 정교하게 겨냥하기 때문이다. 건강 정보는 판단하기 어렵고, 몸은 누구에게나 가장 민감한 영역이다. AI 편집 기술과 억양 모방이 더해지면, 허위 정보는 ‘사실처럼 보이는 위로’로 둔갑한다. 이 순간, 기술은 정보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점령한다. 그래서 정부의 AI 마크 의무화는 기술 규제가 아니다. 감각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이다. 뇌는 “보이는 것을 우선적으로 믿도록” 진화했고, 현대인의 피로와 과부하는 그 판단력을 더 취약하게 만든다. 한 소비자는 이렇게 말했다. “알고 보면 광고였는데도, 한동안 진짜라고 믿었어요.” 이 말은 기술이 강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지쳐서 감각을 의심할 에너지가 없다는 뜻이다. AI 영상의 위협은 기술의 위협이 아니다. 우리의 현실 접근 방식이 기술에 잠식되는 과정이다. 미래의 정보 전쟁은 기술의 정확도가 아니라, 누가 더 깊게 우리의 감각을 흔드는가의 싸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의 최전선은 뉴스나 광고가 아니라, 우리가 오늘 스크롤을 내리는 그 몇 초다. 이미지를 믿는가, 현실을 붙잡는가— 그 선택이 우리의 내일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