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5-12-11 | 수정일 : 2025-12-11 | 조회수 : |

중산층의 소득 증가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는 뉴스는 단순한 경제 통계가 아니다. 한국에서 ‘중산층’이라는 말은 소득의 구간이 아니라 삶의 안정과 정체성의 증명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득이 흔들릴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지갑이 아니라 마음이다. 중산층은 늘 한국 사회의 버팀목이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삶, 노력하면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는 희미한 믿음, 다음 세대에게는 더 나은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이 기대가 중산층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 그런데 올해 소득 3분위 증가율은 역대 최저. 숫자가 떨어진 것이 아니라, 기대의 축이 기울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심리적 계층 붕괴(psychological class erosion)’라고 부른다. 소득이 줄어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는 여전히 중산층인가?” “그래도 나아질 수 있을까?” 이 질문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이 진짜 위기다. 생활비는 오르고, 집값은 떨어지지 않고, 교육비는 부담을 넘어 공포가 되었다. 가계의 체감 불안은 통계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인다. 월급은 늘지 않는데 지출은 조용히 상승하고, 저축은 계획이 아니라 전설처럼 느껴진다. 이 불안은 어느 순간 생계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가 된다. 한 가장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난해진 건 아닌데, 갑자기 미래가 작아진 느낌입니다.” 이 말은 중산층의 위기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다. 삶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 자체가 줄어드는 것. 중산층이 흔들리는 사회는 단순한 양극화 사회가 아니다. 중산층은 어느 사회에서나 ‘가능성의 중간 지대’를 상징한다. 이 지대가 무너지면 사람들은 더 이상 미래를 단계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아니라, 사다리를 붙잡고 버티는 감정만 남는다. 그래서 지금의 문제는 소득이 아니라 심리적 기반의 붕괴다. 한국 사회가 지탱해온 “중간의 안정”이 흔들릴 때, 개인은 경제적 불안보다 더 깊은 감정적 피로에 직면한다. 그리고 이 위기는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여전히 중산층이라는 감각을 느끼는가? 아니면 ‘버티는 삶’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나를 대체하고 있는가? 중산층의 위기는 숫자가 아니다. 삶의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