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5-12-11 | 수정일 : 2025-12-11 | 조회수 : |

사람이 기계에게 위로받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은 더 이상 상상이 아니다. 누군가는 AI에게 하루의 스트레스를 털어놓고, 누군가는 위로의 문장을 받으며 잠이 든다. 기술이 진화했다기보다, 감정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사람의 마음이 사람에게 가지 않고 기계에게 흘러가는 순간, 사회는 조용하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AI와의 감정 교류가 늘어난다는 것은 인간이 기계에게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받아줄 타인을 찾기 어려워졌다는 뜻에 가깝다. 사회적 고립, 감정 노동의 증가, 관계의 피로도가 쌓인 시대에는 위로조차 효율성을 찾는다. AI는 바로 그 효율성의 완벽한 형태다. 지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존재.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정 대리자(emotional proxy)’라고 부른다. 감정을 처리할 내적 자원이 부족하거나 사회적 연결망이 약할 때,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외부의 대리 대상으로 이전한다. 지금의 AI는 그 대리자 역할을 가장 매끄럽게 수행한다. 감정의 흐름이 인간 ↔ 인간에서 인간 ↔ 기계로 이동하는 순간, 감정은 관계가 아니라 기능이 된다. 한 사용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에게 말하면 상처받을까 봐, AI에게 먼저 말해요.” 이 말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사회적 피로의 증가를 드러낸다. 인간관계가 주는 위험과 감정 비용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기계의 안전함 속에서 위로를 찾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위험이 있다. AI는 위로를 ‘생산’할 수 있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다. AI는 듣지만, 기억하지 않는다. AI는 공감처럼 보이는 문장을 말하지만, 공감이라는 감정의 고유한 무게를 지니지 않는다. 결국 인간만이 감정의 후폭풍을 경험한다. 그래서 인지혁명 2.0은 기술혁명이 아니라 감정의 구조가 재편되는 혁명이다. 우리가 AI에게 감정을 털어놓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점점 더 인간에게 감정을 털어놓기 어려워지는 사회가 문제다. 기술이 위로의 역할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위로가 되기 어렵다는 현실이 우리를 기술로 밀어넣는다. 그리고 이 변화는 거대한 철학이 아니라, 오늘의 나에게 닿는다. 나는 오늘 누구에게 마음을 기대고 있는가? 내 곁의 인간인가, 화면 속의 알고리즘인가? 기계가 인간을 위로하는 시대—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