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5-12-10 | 수정일 : 2025-12-10 | 조회수 : |

과학기술이 성장하는데 인재는 떠난다는 뉴스는 한국 사회의 깊은 모순을 보여준다. 기술은 해마다 발전하고 논문 수는 늘어나지만, 정작 이 기술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미래의 가능성은 커지는데, 그 가능성을 만들 주체가 밖으로 향하는 이 괴리는 단순한 인력 수급 문제가 아니다. 아시아는 지금 거대한 인재 이동의 시대에 들어섰다. 싱가포르·대만·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연구자에게 압도적인 재정 지원과 자율성을 제공하고, 일본은 장기 연구를 보장하는 기금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성과 중심 문화, 낮은 연구 자율성, 과도한 행정 업무, 불안정한 연구직 구조가 인재들을 지치게 만든다. 기술이 성장한다고 해서 사람이 자동으로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사회학에서는 이 현상을 ‘정착 매력도의 붕괴(attractiveness collapse)’라고 부른다. 사람은 더 많은 돈이나 더 좋은 장비 때문에 떠나는 것이 아니라, 머물 이유가 약해졌기 때문에 떠난다. 머물 이유가 약해지는 사회에서는 실력 있는 사람일수록 먼저 떠난다. 왜냐하면 떠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 국내 연구자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연구하는 건 가능하지만, 연구자로 살아가는 건 어렵습니다.” 이 말은 지금의 문제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한국은 연구할 환경을 만들었지만, 연구자가 ‘존중받으며 살아갈 환경’은 만들지 못했다. 과학은 성장했지만, 과학자의 삶은 성장하지 않았다. 국가들은 이제 기술보다 인재를 경쟁한다. 기술은 투자하면 는다. 하지만 인재는 투자만으로는 오지 않는다. 사람이 머물고 싶은 사회, 질문하고 실패해도 괜찮은 문화, 연구가 직업이 아니라 삶이 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결국 거대한 국가 전략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 닿는다. 내가 일하고 싶은 곳, 아이가 자라며 꿈꾸고 싶은 곳, 나의 재능이 존중받을 곳이 어디인가 하는 질문은 연구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질문이다. 과학은 한국을 성장시킬 수 있지만— 사람이 떠나면 그 성장은 미래를 잃는다. 한국이 지켜야 할 것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재능이 머물 수 있는 온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