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6-01-31 | 수정일 : 2026-01-31 | 조회수 : 16 |

세금은 언제나 숫자의 언어로 말해지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숫자가 아니라 감정으로 반응한다. 누군가 얼마를 냈는지보다, 왜 그렇게 냈는지, 혹은 왜 그렇게 보이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그래서 조세에 관한 논쟁은 늘 법률서가 아니라 광장에서 벌어진다.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세금은 오랫동안 도덕의 문제가 아니었다. 고대 국가에서 세금은 정복자가 패자에게 부과한 징발이었고, 중세에서는 군주가 백성에게 요구하는 통치의 대가였다. 세금은 힘의 문제였지, 정의의 문제는 아니었다. 세금이 도덕의 언어를 갖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근대 국가가 형성되고, 시민과 국가 사이에 계약이라는 개념이 들어오면서부터다. 세금은 더 이상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유지하기 위해 나누는 몫이 되었다. 이 지점에서 조세는 법을 넘어 사회적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법적으로 무엇이 가능한지와는 별개로, 사회는 묻기 시작한다. “이 방식이 공동체의 감각과 어긋나지는 않는가?” 그래서 조세회피와 탈세는 늘 함께 언급되지만, 전혀 다른 층위의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탈세는 법을 어긴 행위다. 명확하다. 반면 조세회피는 법의 테두리 안에 있다. 허용된 선택지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세회피는 종종 탈세보다 더 강한 비난을 받는다. 이 모순은 어디서 오는 걸까. 정치철학자 존 롤즈(John Rawls)는 사회를 하나의 협력 체계로 보았다. 각자가 능력에 따라 기여하고, 그 결과가 공정하게 분배될 때 사회는 정당성을 갖는다. 이 관점에서 세금은 단순한 부담이 아니라 협력에 참여했다는 표시다. 문제는 조세회피가 이 표시를 흐리게 만든다는 데 있다. 법적으로 문제는 없지만, 협력의 제스처가 약해 보일 때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특히 이 불편함은 유명인에게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유명인은 개인이면서 동시에 상징이다. 그들의 행동은 사적 선택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대중은 그들을 하나의 ‘사회적 존재’로 바라본다. 그래서 같은 행위라도 무명의 개인에게는 조용히 지나가는 일이, 유명인에게는 사회적 논쟁으로 번진다. 이때 세금은 회계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로 변한다. “조세회피는 권리다”라는 말이 반복해서 논란을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문장은 사실에 가깝다. 조세회피는 법적으로 허용된 권리다. 하지만 이 문장은 법의 언어로는 정확해도, 공동체의 언어로는 거칠다. 권리라는 단어는 개인의 선택을 강조하지만, 세금은 필연적으로 공동체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런 긴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 논란, 스포츠 스타들의 세금 문제, 글로벌 IT 기업의 조세 전략까지. 시대와 주인공은 달라져도 질문은 늘 비슷하다. “이 행동이 합법인가?”가 아니라 “이 행동은 어디에 서 있는가?” 그래서 조세 논쟁은 끝나지 않는다. 법은 점점 정교해지지만, 공정성에 대한 감정은 숫자로 정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는 언제나 계산된 결과보다 태도를 먼저 읽는다. 그리고 그 태도가 공동체의 감각과 어긋날 때, 합법이라는 말은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조세회피를 둘러싼 논쟁은 누군가를 단죄하기 위한 것이기보다, 우리가 어떤 사회를 상상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장면에 가깝다. 세금을 둘러싼 말들이 반복될수록, 사실 사람들은 숫자가 아니라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조세회피는 권리다”라는 말이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 문장이 틀려서가 아니라, 너무 정확해서 불편해지는 이유를 생각하면서. ----------------- ㅇㅇㅇ 200억 탈세 의혹에…납세자연맹 "무죄추정 원칙 지켜져야" (iMBC 2026.01.29) ㅇㅇㅇ 탈세 논란에 납세자연맹 " '추징=탈세' 아냐, 무죄추정 원칙 필요" (조선비즈 2026.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