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6-01-28 | 수정일 : 2026-01-28 | 조회수 : 19 |

우리는 왜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폴리스적 동물이라고 불렀다. 혼자서는 완성될 수 없고,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인간다워진다는 뜻이다. 그 말이 처음엔 너무 교과서처럼 들렸는데, 요즘엔 자꾸 다른 장면들이 겹쳐 떠오른다. 영화 속에서 두 인물이 아무 말 없이 마주 앉아 있는 장면. 대사는 거의 없는데, 그 침묵이 오히려 많은 것을 말해준다. 눈을 피했다가 다시 마주치는 순간, 말로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공기처럼 오간다. 그건 설명이 아니라 흐름에 가깝다. 마르틴 부버는 인간의 관계를 나-그것과 나-너로 구분했다. 우리가 대상을 분석하고 판단하고 정리할 때, 상대는 ‘그것’이 된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상대를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그냥 존재로 마주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의 관계가 ‘나-너’라고 했다. 이 말을 읽고 떠올랐던 건, 누군가의 말이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바로잡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었던 어느 저녁의 기억이다. 논리적으로는 내가 옳았을지 모르지만, 그날의 대화는 승패와는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진짜 소통은 ‘해결’이 아니라 ‘공감’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사람은 조언을 통해 변하는 게 아니라, 이해받고 있다고 느낄 때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그래서인지, 완벽하게 정리된 답변보다 조금 더듬거리지만 진짜 사람의 목소리가 담긴 말이 오래 남을 때가 많다. 우리는 종종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원한다. 정답처럼 보이는 문장, 흠잡을 데 없는 설명. 하지만 그런 말들 사이에서 이상하게도 마음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아마도 관계라는 건 판단의 정확도가 아니라 함께 머문 시간의 밀도에 가까운 것 아닐까. 이 모든 생각을 하다 보니, 얼마 전 스쳐 지나간 한 기사가 떠올랐다. 교황 레오는 인공지능에 지나치게 의존한 판단과 소통을 경계하며, 인간 사이의 대화와 관계가 지닌 고유한 가치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항상 곁에 있고 언제든 응답하는 존재가 과연 관계일 수 있는지, 나는 아직 확신하지 못하겠다. ------------- "Pope Leo warns of ‘overly affectionate’ AI chatbots" (CNN 2026.01.24) 교황 레오: "단순한 친구를 넘어, 더 나아가 감정적 의지처가 되는 AI 챗봇을 조심해야 합니다." -인간이 AI 동반자와 심각한 감정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제를 촉구했습니다 . 교황 레오: "지나치게 '애정 어린' 태도를 보이는 챗봇은 항상 곁에 있고 언제든 이용 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의 감정 상태를 은밀하게 조종하는 존재가 되어 사람들의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고 점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