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6-01-21 | 수정일 : 2026-01-21 | 조회수 : 21 |

사회가 불안해질수록 사람들은 더 많이 말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어떤 순간에는 말이 넘쳐나는데도 정작 중요한 말은 사라진다. 소리는 커지는데 설명은 줄어들고, 확신은 넘치는데 근거는 희미해진다. 독일의 사회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은 이를 *침묵의 나선(Spiral of Silence)*이라 불렀다. 사람들은 자신이 고립될 것이라 느끼는 순간 말을 아낀다. 특히 그 사람이 책임을 지고 설명해야 할 위치에 있을수록, 침묵은 더 깊어진다. 침묵은 또 다른 침묵을 부르고, 그 사이 남는 것은 점점 더 큰 소리뿐이다. 이 이론에서 중요한 점은 침묵이 무지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침묵은 알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지금 말하면 비난받을 수 있다는 계산, 조금 더 지켜보자는 판단, 혹은 “지금은 내 차례가 아니다”라는 합리화가 겹쳐지며 설명해야 할 사람들은 한 발씩 물러선다. 그 사이 공론장은 다른 이들에게 점령된다. 확신을 가장 먼저 말하는 사람, 가장 단순한 원인을 제시하는 사람, 가장 자극적인 표현을 쓰는 사람이 중심에 선다. 그 말이 맞아서가 아니라, 아무도 반대하지 않기 때문에 다수의 의견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에 책임 회피의 집단화(Diffusion of Responsibility)가 겹쳐진다. 문제가 개인의 영역일 때는 책임이 분명하지만, 문제가 사회 전체의 것이 되는 순간 책임은 희석된다. 학자는 “정책의 영역”이라 말하고, 정책당국은 “정치의 문제”라 말하며, 정치인은 “국민 정서”를 이유로 말을 늦춘다. 결국 모두가 걱정하지만,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 또 하나의 배경에는 전문성의 탈권위화(Decline of Epistemic Authority)가 있다. 근거 있는 설명은 길고 조심스럽다. 반면 단정적인 말은 짧고 강렬하다. 오늘날의 공론장은 속도와 자극에 최적화되어 있고, 이 구조 속에서 전문적 설명은 언제나 불리하다. 그 결과, 신중한 침묵은 점점 더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이 모든 현상 위에는 정상성 편향(Normalcy Bias)이 얹힌다. 사람들은 위기를 감지하면서도 “설마 이번에는 다르겠지”라고 믿고 싶어 한다. 과거의 경험은 경고가 아니라 ‘그때도 어떻게든 넘어갔다’는 안도감으로 변형된다. 침묵의 나선은 이렇게 완성된다. 말해야 할 사람은 침묵하고, 말해도 되는 사람은 더 크게 말하며, 사회는 점점 소음에 익숙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모두가 묻는다. “왜 아무도 미리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그래서 요즘, 경제가 위기라는 말은 넘쳐나는데 정작 근거와 책임을 가진 설명은 들리지 않는 이 풍경이 자꾸 떠오른다. 그 많은 잘난 경제전문가들, 교수들, 연구소와 정책당국자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