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5-12-09 | 수정일 : 2025-12-09 | 조회수 : |

트럼프의 승리가 확정되자마자 한국 경제의 계산표가 바뀌었다. 미국에 쏟아부은 수천억 달러의 투자 효과는 절반으로 축소되고, 그동안 어렵게 확보해온 자동차 관세 절감 효과는 하루아침에 역전되었다. 겉으로는 한국이 25% 관세 요구를 15%로 낮춰 ‘얻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 기업이 미국 현지에 투입한 3500억 달러의 투자 효과가 줄어든 손실이 관세 혜택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은 거의 논의되지 않는다. 금액이 문제가 아니다. 한국 경제가 미국이라는 그늘 아래 얼마나 깊이 기대어 있었는지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경제의 충격은 외부에서 왔다고 말하지만, 사실 충격을 키운 것은 내부의 구조다. 의존은 관계가 아니라 자세다. 한국 경제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처럼 미국을 바라보았고, 그래서 상대의 방향이 조금만 바뀌어도 우리의 중심이 기울어진다. 충격은 바람이 아니라, 바람을 견디지 못하는 기둥의 문제다. 3500억 달러 손실이라는 숫자는 무겁지만, 더 무거운 것은 그 숫자가 보여주는 ‘권력의 비대칭’이다. 미국은 선택을 하고, 한국은 대응을 한다. 미국은 규칙을 만들고, 한국은 조정한다. 세계화의 시대가 끝나가면서 의존의 가격은 점점 더 비싸지고 있다. 정치경제학에서는 이를 ‘종속적 상호의존성(Asymmetric Interdependence)’이라고 부른다. 상호의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관계의 깊이가 서로 다르고 위험 부담이 기울어져 있는 상태다. 한국은 미국과 연결되어 있지만, 그 연결은 때때로 사슬에 가깝다. 이 사실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장면이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의 정책을 분석하지 않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사람을 예측하는 건 무의미하니까요”라고 말했다. 분석을 포기하는 순간이야말로 의존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이다. 문제는 트럼프가 아니라, 트럼프 같은 변수에 따라 우리의 경제 전략이 매번 다시 쓰여야 한다는 점이다. 전략이 아니라 대응을 반복하는 경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우리는 늘 선택을 기다리고, 결정은 밖에서 도착한다. 그래서 이 사태의 본질은 손해가 아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투자나 관세 혜택이 아니라, 주도권이라는 감각 자체다. 한국 경제는 지금 타격을 입은 것이 아니라— 누구의 선택에도 흔들리지 않는 독립성을 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