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6-02-10 | 수정일 : 2026-02-10 | 조회수 : 7 |
AI가 무엇을 대신할 수 있는가보다, 인간이 무엇을 맡아야 하는지가 다시 묻히고 있다.

AI가 발전할수록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로 옮겨간다.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인간은 늘 같은 질문을 던져왔다. “이번에는 정말 다르지 않을까?” 증기기관 앞에서, 전기 앞에서, 컴퓨터 앞에서, 그리고 지금 인공지능 앞에서. 하지만 역사를 길게 놓고 보면 기술은 인간을 밀어낸 적이 거의 없다. 대신 인간이 하던 일을 바꾸어 왔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할 때 공포가 생긴다. 사라지는 것은 ‘직업’이 아니라 ‘과업’이다 (Task Displacement vs. Task Transformation) 기술 변화의 첫 오해는 “직업이 사라진다”는 말이다. 경제사와 노동경제학은 훨씬 정밀하게 말한다. 사라지는 것은 직업(job)이 아니라 과업(task) 이다. 타자기는 비서를 없애지 않았다. 비서의 역할을 바꾸었다. 계산기는 회계사를 없애지 않았다. 계산을 맡기고 판단을 남겼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반복적 계산, 탐색, 분류, 패턴 인식 같은 과업은 빠르게 이전된다. 그러나 무엇을 문제로 삼을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지, 타인과 협업할지는 남는다. 여기서 인간의 자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구조가 바뀔 뿐이다. 경쟁이 아니라 보완으로 작동할 때 생산성은 커진다 (Complementarity Theory) 기술과 인간을 경쟁 구도로 놓는 순간, 질문은 틀어진다. 현대 경제학은 기술을 보완재(complement) 로 본다. AI는 빠르다. 인간은 맥락을 이해한다. AI는 최적화를 잘한다. 인간은 목표를 정의한다. AI는 과거 데이터에 강하다. 인간은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 이 보완성이 작동할 때 생산성은 폭발한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조직이 이 보완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는가다. 생각은 머리 안에만 있지 않다 (Extended Cognition) 인지과학은 오래전부터 말해왔다. 인간의 사고는 두개골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메모, 지도, 계산기, 검색엔진은 모두 사고의 일부였다. AI는 이 연장선에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 이전 도구들은 인간의 요청에 반응했지만, AI는 제안하고, 보완하고, 때로는 앞서간다. 그래서 불안이 생긴다. “내 생각이 대체되는 건 아닐까?” 그러나 확장된 인지는 인간을 약화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사고의 범위를 넓혀왔다. 완전 자동화가 아니라 ‘사람이 끼어 있는 구조’ (Human-in-the-loop) 실제 현장에서 가장 안정적인 시스템은 완전 자동화가 아니다. 인간이 완전히 배제된 시스템은 오류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중요한 개념이 Human-in-the-loop다. 판단의 최종 책임, 윤리적 기준, 예외 처리에는 사람이 남는다. 이 구조는 기술의 한계를 인정해서가 아니다. 사회가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런 말이 나온다 이 모든 맥락 위에서 최근 한 기술 기업 창업자는 이렇게 말했다. AI는 공학의 영역에서 강해질 것이고, 인간은 인문학적 능력에서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이 말은 위로가 아니다. 역사가 반복해서 보여준 역할 재정의의 언어다. 인간의 가치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측정 방식이 바뀌고 있을 뿐이다. AI 시대의 질문은 더 이상 “인간은 필요한가?”가 아니다. “인간은 무엇을 맡아야 하는가?” 그 질문을 피하지 않는 사회만이 기술을 감당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한 문장이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AI는 공학을, 인간은 인문학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위로나 낙관이라기보다, 이미 시작된 역할 재편에 대한 조용한 확인처럼 들린다. 기술이 무엇을 대신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인간이 무엇을 맡아야 하는지가 다시 묻히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