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6-02-10 | 수정일 : 2026-02-10 | 조회수 : 4 |
분노와 응징은 정책의 대안이 될 수 없으며, 경제학은 시장이 작동하는 구조를 먼저 묻는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분노가 먼저 모이고, 응징이 대안처럼 호출된다. 기업이 잘못했으니 강하게 때려야 하고, 그래야 사회가 바로 설 것이라는 확신이다. 이 확신은 직관적으로는 설득력이 있지만, 경제학의 언어로 옮겨 놓는 순간 다른 질문이 시작된다. 응징은 정말로 시장을 더 잘 작동하게 만드는가?
최근 논란이 된 유통·플랫폼 기업을 둘러싼 이슈에서도 같은 흐름이 나타났다. 개인정보 유출, 노동 문제, 시장 지배력 논란이 한데 엮이며 “회사가 망할 정도의 충격을 줘야 한다”는 말까지 등장했다. 여기에 새벽배송 금지, 영업 제한, 투자 압박 같은 규제 아이디어들이 연쇄적으로 제안된다. 표면적으로는 모두 정의의 언어다. 그러나 경제학은 이 지점에서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묻는다. 이 개입은 누구의 비용을 늘리고, 누구의 선택을 줄이는가?
1. 시장 실패와 정부 실패는 대칭 구조다 경제학은 오래전부터 Market Failure(시장 실패)뿐 아니라 Government Failure(정부 실패) 역시 분석 대상이라고 말해 왔다. 시장이 완벽하지 않듯, 정부 역시 완전한 조정자가 아니다. 정보는 제한돼 있고, 결정은 정치적 유인을 따른다. 이 관점에서 보면 기업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설계된 규제가 또 다른 비효율을 낳을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2. 규제의 정치경제학: 선의는 항상 왜곡된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Regulatory Capture(규제 포획)다. 규제는 처음엔 공익을 목표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특정 이해관계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할 수 있다. 규제가 많아질수록,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대형 기업만 살아남고 경쟁자는 퇴출된다. 역설적으로 “기업을 혼내기 위한 규제”가 경쟁을 줄이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3. 감정적 정책 결정의 비용 최근 정책 논의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Affective Politics(감정 정치)다. 분노, 실망, 배신감 같은 감정이 정책 속도를 밀어붙인다. 그러나 경제학은 정책의 효과를 의도(intention)가 아니라 결과(outcome)로 평가한다. 응징은 즉각적인 만족을 주지만, 그 비용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한다. 가격 인상, 서비스 축소, 노동 선택권 감소 같은 형태로 말이다. 4. 해외 사례가 말해주는 것 유럽연합은 사전 규율(ex ante regulation)을 통해 시장 진입 조건을 엄격히 관리한다. 미국은 기업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되, 문제가 발생하면 사후 집행(ex post enforcement)으로 강하게 책임을 묻는다. 영국은 두 방식을 혼합한다. 차이는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 기업을 응징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시장이 작동하도록 구조를 관리한다는 점이다.
기업의 잘못은 분명히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경제학이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분노를 해소하고 싶은가, 아니면 시장을 더 잘 작동하게 만들고 싶은가? 응징은 쉬운 답처럼 보이지만, 시장 질서를 대신할 수는 없다. 정부의 역할은 감정을 대리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경쟁이 작동하는 조건을 지키는 데 있다. 그 경계를 흐릴수록, 비용은 결국 사회 전체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