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6-02-10 | 수정일 : 2026-02-10 | 조회수 : 5 |
한국 사회에서 계층 이동이 멈춘 이유는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출발선이 결과를 고정시키는 구조에 있다.

열심히 살았는데도 자리가 그대로라면,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구조일 수 있다. 열심히 살면 올라갈 수 있다고 배웠다. 그 말을 아직도 믿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요즘 한국 사회에서 이 믿음은 점점 설명을 요구받는 문장이 되어가고 있다.
최근 여러 조사와 기사들은 비슷한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성공의 기준은 여전히 ‘노력’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삶의 결과는 그렇지 않다는 체감이다. 취업, 자산 형성, 주거, 결혼, 교육까지— 개인의 선택과 의지가 미치는 영향은 점점 줄어들고, 출발선이 결과를 좌우하는 듯한 구조가 일상 언어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제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은 위로이기보다는 질문을 낳는다. 왜 성실했는데도 자리는 그대로인가. 왜 같은 노력을 해도 결과는 이렇게 다른가. 이러한 감각은 막연한 불만이나 세대 특유의 푸념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의 사회이동성 진단과 사회정책 개편방향 연구」에서도 성인의 다수는 한국 사회에서 계층 이동이 활발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그 이유로 개인의 노력보다 부모의 경제력과 사회적 배경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개인의 체감과 사회적 진단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셈이다.
이 지점부터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읽을 필요가 있다. 첫째, 이는 사회이동성(social mobility)의 문제다. 사회이동성이 낮다는 것은 단순히 가난한 사람이 가난하게 남는다는 뜻이 아니다. 상위로 이동할 수 있는 통로 자체가 좁아지고, 그 통로에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이 특정 배경에 고정된다는 의미다. 둘째, 여기에 작동하는 것은 매튜 효과(Matthew Effect)다. 초기 조건에서 유리한 사람은 더 많은 기회를 얻고, 불리한 조건에서 출발한 사람은 같은 노력을 해도 누적에서 밀린다. 격차는 개인의 선택 때문이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구조적으로 확대된다. 셋째, 이 구조는 능력주의(meritocracy)의 언어로 정당화된다. 결과의 차이를 능력의 차이로 설명하면 시스템은 질문을 받지 않는다. 노력했지만 실패한 개인은 ‘부족한 사람’이 되고, 출발선의 불평등은 논의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넷째, 이 과정에서 사회는 기대의 조정(expectation adjustment)을 겪는다. 사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사람들은 목표를 낮추거나 비교 대상을 바꾼다. 이것은 체제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체제에의 적응이다.
계층 이동성의 문제는 분노를 자극하기보다는 침묵을 낳는다. 사람들은 더 이상 “왜 안 되느냐”고 묻기보다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사회가 이동을 멈춘 채 유지될 수는 없다. 움직이지 않는 사다리는 결국 사다리로서의 의미를 잃는다. 그때 개인의 노력은 미덕이 아니라 비용이 되고, 성실함은 약속이 아니라 시험이 된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누가 더 노력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움직일 수 있는 구조 위에 서 있는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