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6-02-01 | 수정일 : 2026-02-01 | 조회수 : 12 |

사람은 원래 판단하는 존재였다. 무엇을 먹을지, 어디로 갈지, 누구를 믿을지, 언제 멈출지를 스스로 정해야 했다. 판단은 불편했고, 피곤했고, 때로는 틀렸지만, 그 불편함 자체가 인간의 몫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늘 이 불편함을 덜어내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도구는 노동을 덜어주었고, 제도는 선택의 부담을 줄였으며, 규칙은 판단을 자동화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노동’이 아니라 ‘판단’ 자체를 외주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 판단의 외주화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판단의 외주화’는 AI 시대에 갑자기 등장한 개념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오래전부터 판단을 타인과 시스템에 맡겨왔다. 신용평가 점수는 “이 사람을 믿어도 되는가”라는 판단을 숫자로 바꿨고, 시험 점수는 “이 사람이 능력 있는가”라는 질문을 순위로 대체했다. 규정과 매뉴얼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사전에 제거했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이를 ‘합리화’라고 불렀다. 세계는 점점 계산 가능해지고, 예측 가능해지며, 개인의 직관과 책임은 시스템 뒤로 물러났다. 우리는 더 효율적인 사회를 얻는 대신, 판단의 주체로서의 감각을 조금씩 포기해 왔다. ⛔️ 자동화는 늘 판단보다 먼저 책임을 분리해 왔다 산업혁명 시기, 기계는 인간의 손을 대신했지만 사고가 나면 책임은 명확했다. 기계를 만든 사람, 관리한 사람, 사용한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자동화가 ‘결과’를 넘어 ‘판단 과정’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비행기의 자동조종장치, 주식의 알고리즘 매매, 공장의 품질관리 시스템은 “왜 그렇게 판단했는가”라는 질문에 즉각적인 설명을 주지 않았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런 상황을 ‘책임의 공백’이라고 불렀다. 행위는 발생했지만, 그 행위의 주체를 특정하기 어려운 상태. 모두가 관여했지만, 아무도 최종 판단자는 아닌 상태. AI는 판단을 ‘더 잘’하지 않는다, 다만 ‘더 멀리’ 밀어낼 뿐이다 AI는 판단을 인간보다 잘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자주 던져지지만, 사실 핵심은 아니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AI가 판단을 할수록, 인간은 그 판단에서 얼마나 멀어지는가. 알고리즘은 확률을 계산하고, 패턴을 학습하고, 결과를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판단의 흉내이지, 책임을 수반한 선택은 아니다. 법철학에서 책임(responsibility)은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ㅇ 의도 ㅇ 이해 ㅇ 설명 가능성 ㅇ 수정 가능성 을 전제로 한다. AI는 결과를 낼 수는 있어도, “왜 그렇게 판단했는가”에 대해 도덕적으로 답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판단과 책임은 분리된다. 우리는 이미 익숙해져 버렸다 이제 많은 장면에서 이런 말이 자연스럽다. ㅇ “시스템이 그렇게 나왔습니다.” ㅇ “알고리즘 결과입니다.” ㅇ “자동으로 처리됐습니다.” 이 문장들은 편리하다. 누군가의 판단을 요구하지 않고, 누군가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문제는 이 문장들이 반복될수록, 인간은 점점 판단의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점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책임 회피의 학습이라고 부른다. 판단을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 오래 노출되면, 판단 능력 자체가 퇴화한다. 그래서 이 장면이 떠올랐다 얼마 전 중국에서 한 사람이 AI의 판단에 따라 행동했다가 손해를 보았고, 그 책임을 묻기 위해 법원에 갔다. 법원의 판단은 단순했다. AI는 책임 주체가 아니다. 책임은 개발자와 운영자에게 있다. AI는 판단했지만, 책임질 수 없었다. 판단은 있었으나, 주체는 없었다. 이 판결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익숙한 결론이어서 오래 남는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판단은 밖으로 보내고, 책임은 공중에 남겨두는 사회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구조가, 이제야 분명한 문장으로 법정에 적혔을 뿐이다. --------------- Chinese court finds AI developer not automatically liable for AI hallucination errors (Sixth Tone 2026.01.28) - 항저우 인터넷 법원이 AI 챗봇의 허위 정보(허위 답변 hallucination)로 인한 손해에 대해 " 단순히 AI가 잘못 답했다고 해서 AI 개발자에 곧바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결" "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실제 과실이나 피해가 개발자 또는 운영자에게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