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6-01-24 | 수정일 : 2026-01-24 | 조회수 : 24 |

나는 오래전부터 승부차기가 불편했다. 경기를 본다는 느낌보다, 결과를 지켜본다는 기분이 더 강해서다. 90분 동안 쌓아온 모든 과정이 마지막 몇 번의 발걸음으로 압축되는 순간, 그 압축이 너무 잔인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불편한 건 승부차기 자체가 아니라 그 구조가 너무 익숙해서일지도 모른다. 승부차기에서 준비는 필요하지만,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준비가 부족했어.” “집중력이 떨어졌지.” “멘탈이 흔들렸어.” 하지만 승부차기는 다르다. 양 팀 모두 준비했고, 양 팀 모두 최선을 다했고, 양 팀 모두 이길 자격이 있었다. 그럼에도 결과는 하나로 갈린다. 이때 떠오르는 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불확실성 속 의사결정이라는 말이다. 아무리 훈련을 해도, 확률은 사라지지 않는다. 준비는 분산을 줄일 뿐, 우연을 제거하지는 못한다. 나는 이 구조가 주식시장, 인생의 선택, 조직의 평가와 너무 닮아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또한 "룰이 바뀌면, 강자의 전략은 무력해진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리그에서는 강자가 살아남는다. 긴 시간 동안 실력이 평균으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너먼트는 다르다. 단 한 번의 실수, 단 한 번의 변수, 단 한 번의 우연이 모든 것을 바꾼다. 이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룰의 문제다.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결과는 참가자보다 설계된 규칙에 더 크게 좌우될 때가 많다. 나는 가끔 “왜 저 사람은 그렇게 무너졌을까”를 생각하다가 “그 사람이 아니라 구조가 그런 건 아닐까”로 생각이 옮겨간다. 그리고 끝날때는 "패배는 종종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생각도 한다 우리는 패배한 쪽에게 이유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늘 개인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구조적 실패라는 말이 있다. 개인이 아무리 잘해도 시스템 자체가 특정 결과를 향해 기울어져 있다면 그 실패는 예정된 것이 된다. 승부차기에서 골키퍼가 방향을 읽어도 공이 반대로 날아가면 끝이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어떤 패배는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결과를 보고 이야기를 만든다 경기가 끝난 뒤, 우리는 서사를 만든다. 이기면 “역시 강팀”, 지면 “역시 한계”. 하지만 그 서사는 사실 결과 이후에 만들어진다. 이것을 결과 편향이라고 부른다. 과정은 같았는데 결과가 다르면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나는 이 지점에서 항상 한 발 물러서 보려고 한다. 결과가 아니라 구조를 먼저 보려고. 그래서, 더 냉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기보다는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진다. 세상이 시끄러워질 수도 있겠구나. 변동이 커질 수도 있겠구나. 모두가 확신에 차 있을 때일수록 한 번 더 구조를 봐야겠구나. 기회를 잡아야 할 때도 있지만, 피해야 할 때도 있다는 걸 이 구조는 조용히 말해준다. 그래서 문득 오늘 신문 뉴스기사에서 이 장면이 특별하게 떠올랐다 이번 다보스포럼에서 아르센 벵거와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가 “32강부터는 승부차기가 마법이 된다”고 말하던 대담이다. 경제이슈를 주로 다루는 다보스포럼에서, 그것도 축구경기 대담에서 삶의 얘기가 들렸다 ------------- 다보스에서 나온 월드컵 비기… "32강부터 승부차기가 마법" 아스널 벵거 감독·2006년 우승 주역 델 피에로 대담 (조선일보 2026.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