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5-12-09 | 수정일 : 2025-12-09 | 조회수 : |

Micron이 소비자용 메모리 사업에서 철수한다는 소식은 기술 산업에서 흔히 있는 조정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조용한 시대의 닫힘이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오랫동안 ‘기술의 쌀’이라 불리며 산업을 지탱해왔지만, 지금은 그 쌀이 너무 흔해져 가격이 가치의 지표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 도달했다. 시장은 성장을 잃은 것이 아니라 방향을 잃었다. 기술은 항상 미래를 약속했지만, 지금의 반도체 산업은 약속보다 생존을 더 절실히 고민하고 있다. 가격 하락과 공급 과잉,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기업들은 기술 개발보다 구조 조정의 타이밍을 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은 기술 산업의 건강함이 아니라 피로의 증거다. Micron의 철수는 패배가 아니라 구조가 바뀌는 순간 뒤로 빠져 서는 전략적 후퇴다. 문제는 그 자리가 비어 있는 동안 누가 들어올 것인가가 아니라, 빈자리조차 의미가 없어졌다는 데 있다. 산업의 중심 축이 ‘메모리’에서 ‘연산(Compute)’과 ‘AI 시스템’으로 이동하면서, 과거의 기술 패권은 조용히 무게를 잃어가고 있다. 산업구조 이론에서 이를 ‘중심 이동(center shift)’이라고 부른다. 중심이 이동할 때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경쟁력이 약한 기업이 아니라 정체성이 고정된 기업이다. Micron의 선택은 시장에서 밀려나서가 아니라, 더 이상 그 자리에서 미래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결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는 이제 기술이라기보다 원자재와 가깝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문장은 반도체 산업 전체의 감정을 정확히 드러낸다. 기술이 상품이 되고, 상품이 원자재가 되고, 결국 원자재는 누구의 것도 아닌 것이 된다. 가치가 아니라 체력이 산업의 생존을 결정하는 시점에 와 있다. 그래서 Micron의 철수는 사라짐이 아니라 신호다. 기술의 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라, 기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질서가 바뀌었다는 신호. 우리는 지금 반도체 산업이 급성장하는 시대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장의 끝에서 보이는 것은 공백이 아니라—다음 시대가 준비되는 조용한 움직임이다. 그리고 한국은 이 변화의 바깥이 아니라 한가운데 서 있다. 미래는 기술을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방향을 읽을 수 있는 나라에게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