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6-01-25 | 수정일 : 2026-01-25 | 조회수 : 15 |
이 26세 남성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기술직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공지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직업이라고 주장하며 억대 연봉을 받는 Z세대 용접공 (로이터 2026.01.24)

그 기사를 읽고 한참을 멈췄다. 26세, 대학 대신 기술직. AI 영향을 받지 않는 직업이라고 했다. 부럽다는 생각은 먼저 들지 않았다. 대단하다는 말도 바로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 한쪽이 묘하게 불편해졌다. 왜일까. 그는 AI를 피했다고 말한다. 정말 AI를 피한 걸까. 아니면, AI가 만들어낸 불안을 피한 건 아닐까. 나는 요즘 자꾸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일은 AI가 대신할 수 있을까?” “이 선택은 몇 년 뒤에도 의미가 있을까?” 예전에는 하지 않던 질문들이다. 질문이 많아졌다는 건, 어쩌면 확신이 줄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 청년은 용접을 선택했다. 손으로 하는 일. 몸이 직접 움직여야 하는 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감각으로 판단해야 하는 일. AI가 잘 못하는 일이라고들 말한다. 그래서 안전하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나는 가끔 생각한다. 우리가 기술직을 안전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 일이 정말 안전해서가 아니라, 눈에 보이기 때문은 아닐까. AI는 보이지 않는다. 조용히, 빠르게, 어디서든 스며든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 반면, 용접은 불꽃이 튄다. 소리가 나고, 땀이 흐르고, 몸이 피곤해진다. 불안은 덜하지만, 고단함은 확실하다. 그는 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선택이 더 이상 ‘낭만’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이건 생존의 이야기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만약 그가 연봉이 높지 않았다면 이 선택은 여전히 용기로 보였을까. 아니면 체념처럼 보였을까. AI를 피하는 선택. 기술을 배우는 선택. 대학을 가지 않는 선택. 이 모든 말 뒤에는 공통된 감정이 하나 있는 것 같다.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 AI가 무서운 게 아니다. 사실은, AI 앞에서 내가 쓸모없어질까 봐 그게 더 무섭다. 그래서 어떤 이는 AI를 더 깊이 파고들고, 어떤 이는 AI가 닿지 않는 곳으로 몸을 옮긴다. 어느 쪽이 옳을까. 아직 모르겠다. 아마 지금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다. 이 청년의 선택은 “대학을 안 가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확신이 없으면, 몸이라도 믿고 싶어진다”는 고백처럼 느껴졌다는 것. 나도 언젠가 이 길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머리보다 손을, 전망보다 당장의 감각을 붙잡고 싶어질까. 그 기사를 덮고도 한동안 그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나는, AI를 두려워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쓸모없어질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걸까. 아직 답은 없다. 그래서 이 질문이 계속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