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6-01-15 | 수정일 : 2026-01-15 | 조회수 : 21 |
“30년 전 다우존스 상위 기업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 자리를 차지한 기업 중 상당수는 당시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202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피터 하윗 미국 브라운대 명예교수는 한국 경제를 향해 ‘창조적 파괴’라는 익숙하지만 불편한 단어를 다시 꺼냈다. 그의 진단은 단순하다. 한국이 과거와 같은 추격형 성장 모델에 머문다면 지금의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퇴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말이 새롭지 않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왜 한국은 수십 년째 창조적 파괴를 말하지만, 정작 아무것도 파괴되지 않는가?

"美 30년전 시총 상위사, 지금은 순위 밖…韓도 창조적 파괴해야"[해외석학 특별인터뷰],(서울경제 2026.01.14) 2025 노벨경제학상 피터 하윗 美브라운대 교수 : "美 경제 유연성 원천은 벤처캐피털,스타트업 거대 기업으로 성장 도와" "韓 혁신기업 지원 금융 시스템 절실" " 추격형서 선도형 경제로 체질개선" ---------------------- 하윗 교수의 발언에서 강조되는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미국 경제의 유연성은 벤처캐피털을 중심으로 한 금융 시스템에서 나왔다. 둘째, 30년 전 세계 최고 기업이었던 회사들은 지금 대부분 시장에서 밀려났다. 그 자리를 차지한 기업들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던 신생 기업들이었다. 셋째, 한국에는 순수 스타트업 출신으로 시가총액 상위권에 오른 기업이 거의 없다. 이 표면만 보면 결론은 단순하다. “한국도 혁신 기업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이 말은 이미 수없이 반복되었다. 문제는 왜 실행되지 않는가다.
한국에 없는 것은 ‘혁신 의지’도 아니고 ‘기술 인재’도 아니다. 부족한 것은 기존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사회가 감당할 준비다. 창조적 파괴는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는 과정이 아니라 기존 기업이 밀려나는 과정을 포함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기존 기업의 몰락은 곧바로 이렇게 번역된다. ㅇ 고용 불안 ㅇ 지역 경제 붕괴 ㅇ 정치적 책임 ㅇ 사회적 실패 그래서 혁신은 언제나 “기존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에서만 허용된다. 즉, 한국의 혁신은 창조만 있고 파괴는 없는 구조다.
하윗 교수가 반복해서 지적한 것은 금융과 경쟁법이다. 미국의 벤처 생태계는 성공보다 실패를 먼저 통과의례로 인정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실패가 곧 개인의 무능, 도덕적 결함, 인생 낙오로 기록된다. 이 구조에서는 누구도 기존 강자를 정면으로 위협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도전의 실패 비용이 개인이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혁신은 항상 정부 사업, 정책 과제, 보조금 틀 안에서만 움직인다. 이는 창조적 파괴가 아니라 관리된 변화에 가깝다.
이 뉴스는 “혁신을 더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사회는 과연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창조적 파괴는 경제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문제다. 파괴를 범죄처럼 여기면서 동시에 혁신을 기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말했다. “자본주의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한국에서는 늘 창조만 읽히고, 파괴는 지워진 채 인용된다. -----------------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 사회에서는, 아무것도 새로 태어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