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5-12-29 | 수정일 : 2025-12-29 | 조회수 : 51 |
경제는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같은 시간, 같은 국가 안에서도 서로 다른 속도와 논리로 분리되어 작동할 수 있다. 최근 내수와 수출 지표의 괴리는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니라, 한국 경제 내부에 서로 다른 체계가 병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격차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고착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내수·수출 출하지수 20년 만 최대 격차 (경향신문 / 2025.12.29) 고환율 국면 속 수출 대기업 실적 방어 (국내 주요 경제지 / 2025년 말) 내수 중소기업·자영업 경기 체감 악화 (각종 경기동향 조사 / 2025년)
이 현상을 단순히 “내수가 부진하다”라고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보다 정확한 진단은 경제의 분절화(fragmentation)다. 한국 경제는 현재 • 외화 수익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수출 경제 • 원화 소비와 국내 수요에 의존하는 내수 경제 이 두 체계가 서로 다른 통화 환경, 다른 비용 구조, 다른 생존 논리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고환율은 수출 대기업에 다음과 같은 효과를 준다. • 달러 기준 매출 확대 • 환차익 발생 • 글로벌 가격 경쟁력 유지 반면 같은 환율은 내수 경제에 다음과 같은 부담을 준다. • 수입 원가 상승 • 생활물가 압박 • 실질 소득 감소 • 소비 위축 → 매출 감소 → 고용 위축 문제는 이 두 영역이 더 이상 상호 보완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수출 성장이 내수 고용과 임금으로 이전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수출 구조는 고용 유발 효과가 낮고, 내부 이전 효과도 제한적이다. 이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이중 경제 구조(dual economy)’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한쪽은 글로벌 시장과 연결되어 성장하지만, 다른 한쪽은 국내 시장에 고립된 채 정체된다. 이때 GDP는 상승할 수 있다. 그러나 체감 경제는 동시에 하강한다. 이 괴리는 심리의 문제가 아니라 지표의 성격 차이에서 발생한다. GDP는 총량을 측정하지만, 개인은 분배된 몫을 체감하기 때문이다.
요즘 경제 뉴스는 이상하다. 분명히 “나쁘지 않다”고 말하는데, 사람들은 점점 더 말이 없어지고 있다. 잘린 건 일자리보다 계획이고, 무너진 건 소비보다 확신이다.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조용히 움츠러들고 있을까. 이 구조가 지속될 경우, 개인에게 나타나는 변화는 예측 가능하다. 소비는 보수화되고, 위험 회피 성향은 강화되며, 중산층의 선택지는 줄어든다. 내수 경제에 속한 개인과 사업자는 성장 국면에서도 불황의 행동을 하게 된다. 지출을 미루고, 고용을 줄이고, 계획을 보류한다. 이때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국가 경제는 성장하고 있는데, 왜 개인은 계속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가. 어쩌면 우리는 이미 ‘성장하는 경제’와 ‘살아내는 경제’가 분리된 사회로 진입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분리는 통계로는 늦게 드러나지만, 생활에서는 먼저 체감된다. 그리고 한 번 굳어진 구조는 정책보다 관성에 의해 더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이 상황을 위기라고 부르기엔 아직 이르다. 그러나 구조라고 부르지 않기엔, 이미 너무 많은 신호들이 반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