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5-12-27 | 수정일 : 2025-12-27 | 조회수 : 26 |
그의 반성문은 사과문처럼 보였지만, 읽고 나면 묘하게 불편해진다. 죄를 인정해서가 아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비춰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저는 분명히 고기능이 되도록 길러졌지만, 무엇을 위한 기능인지는 불분명했습니다.” 이 문장은 개인의 후회가 아니라, 사회가 설계한 인간 모델의 고백처럼 들린다. 우리는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위대해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에 위대해져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성취는 목적이 되었고, 판단은 선택 사항이 되었다. 이 글은 한 범죄자의 몰락을 설명하려는 글이 아니다. 그를 가능하게 했던 구조를 천천히 바라보려는 시도다.

“위대해지라고만 배워” 권도형 반성문과 ‘K-교육’의 그늘 (KBS / 2025.12.26) 테라·루나 사태 주범 권도형, 미국서 징역 15년형 선고 (외신 종합 / 2025.12) 엘리트 교육과 도덕의 공백, 반복되는 금융 범죄의 배경 (국내 주요 언론 / 2025.12) ----------------------- “위대해지라고만 배워” 권도형 반성문과 ‘K-교육’의 그늘" (KBS 2025.12.26 ) [가상화폐 '테라-루나' 사태로 전 세계 수십만 명의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죄로 최근 미국 법원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은 권도형의 반성문 "저는 분명히 '고기능'이 되도록 길러졌지만, 무엇을 위한 기능인지는 불분명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위대한 사람이 될 운명'이라 믿으셨고, 제가 무엇에 위대해져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위대함은 그 자체로 목적이었고, 어머니조차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몰랐던 것 같다." "저는 종종 옳은 일을 처참하게 놓치고 쉬운 길을 택했다고 생각합니다." "초기 성공과 명성에 취했습니다, 저는 지적 겸손을 잃은 지 오래였습니다." "제 오만함이 믿기지 않으며 테라코인에 대한 경고를 침묵시키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깊이 사죄한다는 말뿐입니다."
권도형의 반성문에서 가장 무서운 대목은 범죄의 기술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말하지만, 그 선택을 가능하게 만든 판단 기준의 부재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에 익숙해져 있었다고 고백한다. “위대해질 운명.” 이 말은 격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방향 없는 명령이다. K-교육은 오랫동안 능력의 최대치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해왔다. 문제를 푸는 속도, 성과를 내는 효율, 경쟁에서 이기는 전략. 하지만 멈춰야 할 순간, 의심해야 할 신호, 성공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거의 가르치지 않았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말한 ‘목적 합리성’은 여기서 기이하게 작동한다.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은 극대화되었지만, 그 목표가 정당한지 묻는 가치 합리성은 훈련되지 않았다. 그 결과, 성공은 있었지만 판단은 없었고, 기능은 있었지만 책임은 뒤따르지 않았다. 권도형은 이 구조의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극단적으로 성공한 결과물에 가깝다. 우리가 만든 인간 모델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무 이르게 말하지 않았을까. “너는 위대해질 수 있다”고. 그 말은 과연 누구를 위한 기대였을까. 성취가 윤리를 앞질러도 괜찮다고,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나중 문제라고 우리는 은근히 가르쳐온 건 아닐까. 만약 성공의 기준이 처음부터 잘못 설계되어 있었다면, 그 끝에서 벌어진 붕괴는 개인의 죄로만 정리될 수 있을까. 우리는 또 다른 ‘고기능 인간’을 키우고 있지는 않은가. 판단 없이 빠르고, 멈추지 못하는 인간을. 그리고 언젠가 또 한 사람이 “저는 무엇에 위대해져야 하는지 몰랐습니다”라고 말하게 된다면, 그때도 우리는 개인의 오만만을 탓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