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5-12-26 | 수정일 : 2025-12-26 | 조회수 : 20 |
이 시험이 “미쳤다”는 말은 매년 반복된다. 그러나 다음 해도 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분노는 쌓이지만 규칙은 바뀌지 않는다. 설명이 실패하는 순간, 체계는 오히려 공고해진다. 이해할 수 없음이 예외가 아니라 정상이 되는 사회의 공기 속에서, 시험은 점점 더 낯설어지고 우리는 점점 더 익숙해진다.

"미국 대학 미적분 문제까지… 고교 교육으로는 못 푸는 대입 논술" (조선일보 2025.12.26) "英BBC도 놀란 수능 '불영어'... "고대문자 해독 수준, 미쳤다"(조선일보. 2025.12.15) “8시간 동안 이어지는 악명 높은 마라톤 시험” “대학 진학 여부뿐 아니라 취업, 소득, 미래의 인간관계까지 좌우할 수 있다”
왜 우리는 매년 이 시험이 과하다고 말하면서도, 다음 해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같은 문제를 다시 풀게 할까. 이 시험이 정말 학생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라면, 왜 설명되지 않는 문제가 반복될까. 설명할 수 없는 평가가, 어떻게 공정하다고 불릴 수 있을까. 혹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시험이 이해력을 측정하는 장치가 아니라, 이해하지 못해도 버티는 사람을 가려내는 장치라는 사실을. 그래서 이 구조가 유지되는 것은 아닐까.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 학생이 실패자가 되고, 구조를 설계한 쪽은 언제나 중립의 얼굴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묻게 된다. 이해하지 않아도 통과한 사람들은 훗날 무엇을 이해하지 못한 채 사회를 통과하게 될까. 그리고 우리는 왜, 아이들에게만 이 불합리를 연습시키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