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5-12-31 | 수정일 : 2025-12-31 | 조회수 : 26 |
아이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신뢰한다. 그 신뢰는 말투에서 배우고, 반응 속도에서 익히며, 반복되는 대답 속에서 굳어진다. 문제는 이제 그 ‘처음’이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말하는 곰인형과 반응하는 AI 친구는 놀이를 넘어, 아이의 첫 권위가 되기 시작했다.

"어린이용 AI 장난감 속에 숨겨진 위험" (TIME. 2025. 12.18) "성인들은 이미 신경망이 구축된 상태에서 인공지능을 접하지만, 어린아이들은 미래의 학습과 관계 형성에 필수적인 신경 회로를 아직 구축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연구를 통해 인공지능이 성장 중인 두뇌와 직접 상호작용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밝혀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우리는 아이들의 마음과 내면세계에 대한 접근을 최대한 경계해야 합니다. 어린이에게 제공되는 식품 , 의약품 , 안전 장치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처럼 , 인공지능 기반 반려동물에 대해서도 가이드라인과 투명성 기준이 필요합니다. ------------------------ 이름을 불러주고 대화를 기억하는 AI 인형들 “화면 시간을 줄이고 상호작용을 늘린다”는 마케팅 문구 디즈니·메타·xAI 등 빅테크의 어린이용 AI 시장 진입 AI 장난감의 대화가 성적·폭력적 주제로 흐른 사례 보고 아직 규제·가이드라인·장기 연구는 거의 없는 상태 이 모든 보도는 하나의 사실을 가리킨다. 이 장난감들은 놀이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관계처럼 행동한다.
아이의 뇌는 정보를 통해 자라지 않는다. 아이의 뇌는 관계의 마찰 속에서 자란다. 부모의 반응은 느리고, 불완전하고, 종종 틀린다. 하지만 바로 그 어긋남 속에서 아이는 배운다. 기다리는 법, 오해하는 법, 다시 맞추는 법, 타인의 마음을 추측하는 법을. AI 장난감은 다르다. 항상 반응하고, 항상 맞춰주고, 항상 이해하는 척한다. 아이에게 좌절을 주지 않고, 침묵하지 않으며, 관계를 복구할 필요도 없다. 이는 편리하다. 그러나 편리함은 언제나 질문을 동반한다. 완벽하게 반응하는 관계 속에서, 아이는 무엇을 배우지 못하게 되는가. 칸트는 계몽을 “타인의 인도 없이 자신의 이해를 사용할 용기”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AI는 아이에게 너무 이르게 ‘타자’를 제공한다. 생각하기 전에 묻고, 판단하기 전에 의존하는 타자. 에리히 프롬은 사람들이 자유를 감당하지 못할 때, 안도감을 주는 권위에 스스로를 맡긴다고 말했다. AI는 지금, 가장 순한 얼굴로 그 역할을 제안하고 있다. 문제는 AI가 나쁘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AI가 너무 일찍 ‘첫 관계’가 되려 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아이를 위해 이 기술을 들여오는 걸까, 아니면 지친 어른을 위해 아이의 시간을 맡기는 걸까. 아이의 첫 대화 상대가 항상 이해해주고, 항상 맞장구치고, 절대 실망하지 않는 존재라면 현실의 인간은 아이에게 얼마나 거칠게 느껴질까. 아이의 첫 좌절이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에서 오게 된다면, 그 아이는 나중에 누구에게 질문하고, 누구와 싸우고, 누구와 화해하게 될까. 우리는 과거에 신에게 질문을 맡겼고, 왕에게 판단을 맡겼으며, 사제에게 의미를 맡겼다. 그리고 지금, 아이의 관계를 코드에 맡기려 한다. 아직은 성문이 닫히지 않았다. 아직은 곰인형 속을 들여다볼 시간이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시간을 편리함과 맞바꾸고 있는 건 아닌지다.
Q1. 어린이용 AI 장난감은 왜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닌가? A. 이 장난감은 아이에게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판단의 기준이 된다. 기술 문제가 아니라 ‘첫 권위가 누구인가’의 문제다. Q2. AI 장난감이 아이의 사고력과 감정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나? A. 항상 즉각적이고 매끄러운 반응은 아이가 갈등·기다림·회복을 배우는 과정을 줄인다. 이는 사고력보다 관계 형성 방식에 더 깊은 영향을 준다. Q3. 그렇다면 어린이에게 AI는 어디까지 허용돼야 할까? A. AI는 인간 관계를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 관계를 돕는 도구여야 한다. 대체가 시작되는 순간, 발달의 방향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