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5-12-20 | 수정일 : 2025-12-20 | 조회수 : |
사람들은 요즘 “일자리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점점 정확하지 않다. 일자리는 있다. 너무 많다. 문제는 그 일자리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직 사이트는 매일 갱신되고, 공고는 넘쳐난다. 지원 버튼은 가볍게 눌린다. 그러나 답장은 오지 않는다. 면접은 잡히지 않는다. 결과는 통보되지 않는다. 이때 사람들은 실패했다고 느낀다. 하지만 정말 실패한 것은 개인일까. 아니면, 현실을 설명하던 언어 자체가 고장 난 걸까.

" 존재하지 않는 공석, 즉 '유령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 " Should more be done to tackle ' ghost jobs ', vacancies that don't exist? " (BBC 2025.12.18) 이 현상은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다.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관측되고 있다. " 그렇다면 기업들은 왜 유령 채용 공고를 올리는 걸까요? 그 이유는 다양합니다." " 채용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본 결과, 일부 기업들은 인재 풀을 구축하기 위해 채용 공고를 올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 그들이 채용을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당장 채용하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 실제 성장하지 않더라도 수치를 부풀려 회사가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 합니다." " 기업들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판매하기 위한 채용 공고를 내는 사례도 있습니다. " 가짜 광고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이것이 정부에게 고용 시장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여 현실 세계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 문제를 “부도덕한 기업”의 문제로만 보면 가장 중요한 지점을 놓친다. 유령 일자리는 거짓말이 아니다. 착시에 가깝다. 기업은 채용하지 않지만, 채용하는 것처럼 보이길 원한다. 국가는 고용이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길 원한다. 플랫폼은 공고가 많을수록 활성화된 것처럼 보인다. 이 모든 이해관계가 겹치는 지점에서 ‘일자리’라는 단어는 의미를 잃는다. 사람들은 지원서를 쓰며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상대에게 말을 걸고 있는 셈이다. 이때 구직자는 탈락자가 아니라 통계의 소모품이 된다. 채용 공고는 약속이 아니라, 신호로만 존재한다. 이 현상은 단순한 불성실의 문제가 아니다. 고용 시장이 현실을 반영하지 않게 된 구조적 변화다. 일자리는 더 이상 사람을 뽑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구직자들은 점점 더 자기 능력을 의심하지 않고, 시스템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유령 일자리가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실패를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 사회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이 순간부터 노력은 동기가 아니라 의심의 대상이 된다. 지원은 희망이 아니라 의례가 된다. 그리고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은 현실을 모르는 언어가 된다. 이 현상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곧 일자리가 부족한 사회가 아니라, 설명이 부족한 사회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분노하지 않는 이유는 체념 때문이다. 그리고 체념은 언제나, 가장 조용하게 사회를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