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5-11-26 | 수정일 : 2025-11-26 | 조회수 : |
한국에서 의사는 ‘성분’이 아닌 ‘브랜드명’으로 약을 처방한다. 겉으로는 단순한 용어 차이처럼 보이지만, 이 문제는 훨씬 깊다. 왜 우리는 약의 ‘효능’을 믿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를 믿어야만 하는가? 왜 같은 성분임에도 어떤 제네릭은 환자가 거부감을 느끼고, 왜 의사는 특정 회사의 약을 고집하며, 왜 약사들조차 제네릭을 서로 구분해 설명하지 못하는가? 이번 성분명 논쟁은 단지 ‘이름을 바꾸자’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 의약품 시장을 20년 동안 떠받쳐온 저질 제네릭 난립 → 불투명한 품질관리 → 정보 비대칭 → 브랜드 신뢰 의존 이라는 전체 구조를 통째로 드러낸 사건이다. 이 글은 성분명·브랜드명 논쟁을 넘어 한국 의약품 시스템의 기저에 깔린 품질 신뢰의 붕괴를 경제학·보건의료정책·정보 비대칭 이론으로 해부한다.

“성분명처방 반대, 의사들이 설명하지 못한 모순점”— 블로터(2025.11.25) “한국 제네릭 품질 불신, 제약사·병원·약국 모두 책임”— 한국경제(2025.11.12) “비싼 약은 안전하고 싼 약은 불안하다? 소비자 신뢰의 양극화”— 조선일보(2025.11.03) “제네릭 3,000개 시대… 약사조차 구분 못하는 약들”— 머니투데이(2025.10.28) “의약품 리베이트, 구조적 문제 여전… 브랜드 신뢰 왜곡된다”— 매일경제(2025.10.17) ------------------------------- 한국의 약 처방 방식은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같은 성분이면 같은 약이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한국에서는 “성분이 같아도 약은 다르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다. 그리고 이 믿음은 단순한 오해가 아니다. 한국 의약품 시장의 구조적 현실에서 나온 ‘합리적 판단’이다. 한국에는 한 성분당 50~100개씩 쏟아지는 제네릭, 그 중 일부는 생동성 시험을 통과했는지조차 의심받는 품질, 제조 공정은 불투명하고, 원료는 싸게 수입해 와서 ‘포장만 다른 약’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의사들은 “이 회사 약은 믿을 수 있다”를 기준으로 브랜드를 처방하고, 약사들은 대체조제를 하려다가도 “환자가 부작용 생기면 책임은 나에게…”라는 부담 때문에 망설인다. 결국 환자는 ‘성분’을 신뢰하지 않고, ‘브랜드’를 신뢰한다. 성분명으로 처방하자는 제안이 나올 때마다 한국 사회 전체가 불편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분명은 시스템이 정직하게 작동할 때만 가능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번 글은 바로 이 구조의 뿌리를 파고든다.
한국 제약 시장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정보 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 문제다. 소비자는 제조 공정·함량·불순물·내부 테스트 데이터를 알 수 없고, 의사와 약사조차 모든 제네릭의 품질을 파악하기 어렵다. 정보가 부족할 때 사람들은 무엇을 신뢰하는가? 경제학의 신호이론(Signal Theory)는 이렇게 말한다: “정보를 확인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확인 가능한 외부 신호’를 믿는다.” 한국에서는 그 신호가 브랜드가 됐다. ㅇ A제약은 제조설비 자체가 좋다는 신호 ㅇ B제약은 오랫동안 사용해도 문제 없었던 경험의 신호 ㅇ C제약은 병원과 의사가 선호하는 신호 이 신호들이 ‘품질을 대신 설명하는 지표’가 되어버렸다. 그러면 성분명 처방은 왜 어려운가? 성분명은 *“같은 성분이면 동일한 품질임을 전제로 한 제도”*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같은 성분이라도 ㅇ 가루 입자 크기 ㅇ 정제 압축력 ㅇ 코팅 기술 ㅇ 용출 속도 ㅇ 원료 순도 등 미세한 차이가 실제 흡수율·부작용·효과에 차이를 만든다. 의사와 약사가 브랜드를 신뢰하는 이유는 결코 비합리적이 아니다. 결국 성분명 논쟁은 의사·약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품질 신뢰가 붕괴된 시장구조 문제다.
이번 ‘성분명 처방’ 논쟁은 단지 이름 논쟁이 아니다. 그동안 한국 제약 시장은 몇 가지 불편한 현실 위에서 굴러왔다. ① 제네릭 난립과 품질 편차 — “같은 성분이지만 같은 약이 아니다” 한국은 제네릭 의약품이 지나치게 많다. 특정 성분의 제네릭이 50개 이상인 경우도 흔하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품질 편차다. 실제 식약처 자료와 의학계 연구에서 “같은 성분의 제네릭 간에도 용출 속도·흡수율 차이가 존재”함이 반복적으로 확인됐다. 의사들은 이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에 “이 회사 약은 효과 좋다” “이 회사 약은 환자가 자꾸 부작용을 호소한다” 라는 데이터가 축적된다. 즉 브랜드 = 현장에서 검증된 품질인 것이다. ② 약사도 구분 못하는 제네릭 — 정보 비대칭의 극단 약국에는 동일 성분·동일 용량·동일 제형의 약이 회사만 다르게 수십 개씩 들어온다. 약사조차 모든 회사 제품의 차이를 알 수 없다. 환자는 더 알 수 없다. 그래서 브랜드는 정보 비대칭 해소를 위한 ‘시장 내 유일한 신뢰 신호(Signature)’가 된다. ③ 의약계의 저항 — 기득권인가, 안전성인가? 의사들은 흔히 성분명 처방에 반대하는 집단으로 묘사된다. 겉으로는 “대체조제로 인한 부작용 우려”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병원·의료진이 브랜드 기반으로 환자를 관리해온 현실이 존재한다. 이 구조 자체는 기득권이 아니라 품질 불균등을 관리하기 위한 ‘방어적 선택’인 경우가 많다. ④ 소비자가 이 모든 비용을 떠안는다 한국인은 “비싼 약은 안전하고, 싼 약은 불안하다” 라는 심리를 갖게 되었다. 시장 신뢰가 무너지면 비용은 소비자가 낸다. 성분명 논쟁의 피해자는 의사도, 약사도, 제약사도 아닌 환자(소비자)다. ⑤ 결국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이 틀렸다 성분명 처방을 도입하려면 필수 전제가 있다. ㅇ 제네릭 간 품질이 완전히 동등하고 ㅇ 제조 공정이 투명하며 ㅇ 시장 정보 비대칭이 해소되어야 한다 한국은 지금 이 세 가지 모두가 불충분하다. 그러므로 성분명 논쟁은 “누가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약품 신뢰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재설계돼야 한다”는 신호다.

성분명 처방이 옳은가? 이 질문은 너무 단순하다. 진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약의 품질을 믿을 수 있는가?” 성분명 논쟁을 해결하려면 한국 약품 시장의 신뢰 기반을 리셋해야 한다. ① 제네릭 품질관리의 ‘상향평준화’ 필수 ㅇ 생동성 시험 강화 ㅇ 제조 공정 공개 수준 상향 ㅇ 동일성분 제네릭의 품질 보고서(흡수율·용출률) 개방 ㅇ 원료의약품(API) 정보 공개 이 4가지만 해도 품질 격차의 절반은 사라진다. ② 환자에게 정보 제공 — 의약품 투명성 플랫폼 “이 약은 왜 비싸고, 저 약은 왜 싼지” 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적 정보 플랫폼이 필요하다. ㅇ 원료 출처 ㅇ 제조 국가 ㅇ 제조 공정 ㅇ 품질 시험 결과 ㅇ 부작용 데이터 이 정보가 공개되면 시장의 신뢰 구조가 바뀐다. ③ 의사·약사·정부의 역할 재조정 의사는 ‘브랜드 추천자’가 아니라 ‘품질 설명자’가 되어야 하고 약사는 단순 조제자가 아니라 ‘약품 품질 큐레이터’로 역할이 확장되며 정부는 기계적 규제가 아닌 ‘품질 등급제’ 같은 차별적 신뢰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④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않는 구조 필요 품질 불신은 결국 환자 비용을 상승시킨다. 성분명 처방이든 브랜드명 처방이든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하지 않으면 이 논쟁은 다시 반복될 것이다.
성분명으로 처방할 것인가, 브랜드명으로 처방할 것인가. 이 문제는 사실 “무엇이 환자에게 가장 안전한가?” 라는 질문을 둘러싼 긴 싸움이었다. 한국은 약을 고르는 데 ‘성분’이 아니라 ‘브랜드’를 믿는 시장이다. 그리고 그 구조를 만든 것은 의사도, 약사도, 환자도 아닌 불투명한 품질관리와 시장구조 자체다. 우리가 성분명 논쟁을 진지하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는 이 문제가 단순한 용어 문제가 아니라 “한국 의약품 신뢰 시스템의 붕괴”를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성분명 처방은 언젠가는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이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체계를 바꾸는 것’이다.
성분명 논쟁은 단순한 용어 변경이 아니다. 한국 의약품 시장의 근본적 신뢰 구조가 어디서 무너졌는지를 드러내는 사건이다. 무역·산업과 달리 ‘약’은 소비자가 직접 품질을 확인할 수 없는 대표적 정보 비대칭 제품이며, 그 결과 제네릭 난립·품질 편차·불투명한 제조공정이 20년간 누적되어 ‘브랜드가 곧 품질’이라는 왜곡된 신호 체계를 만들었다. 성분명 처방이 어려운 이유는 의사·약사·환자의 보수성 때문이 아니라, 신뢰 기반이 붕괴된 시장구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분명을 강제하는 제도가 아니라, 제네릭 품질의 상향평준화와 제조·품질 데이터의 투명화, 그리고 소비자 중심의 의약품 정보 공개 시스템이다.
Q1. 성분명이 원칙적으로 더 좋은 제도 아닌가? A. 네, 원칙적으로는 소비자 중심 제도다. 그러나 품질이 균일한 시장에서만 작동한다. Q2. 한국 제네릭 품질은 정말 불균등한가? A. 실제 연구·현장 데이터에서 차이가 반복적으로 발견된다. Q3. 의사가 브랜드를 고집하는 이유는 리베이트 때문인가? A. 일부는 있으나 핵심 원인은 품질 신뢰의 누적 경험이다. Q4. 약사 대체조제가 위험한가? A. 품질 편차가 존재하면 부작용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Q5. 성분명 처방 도입이 왜 어려운가? A. 시스템 전제(품질 균일성·투명성)가 충족되지 않았다. Q6. 제약사에게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A. 제조공정·원료·품질 데이터를 공개하여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Q7. 환자는 무엇을 기준으로 약을 선택해야 하는가? A. 단순 가격이 아니라 제조사 품질 정보·의사·약사의 설명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AI 신약개발의 함정 — 데이터로 만든 약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한국경제, 발행일: 2025.10.08 “병원은 왜 브랜드 의료기기를 선호하는가 — 신호이론으로 본 의료기기 시장”, 조선비즈, 발행일: 2025.09.22 “소비자는 왜 ‘비싼 약’을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가? 행동경제학적 분석”, 매일경제, 발행일: 2025.09.14 “제네릭 3천 개 시대의 품질 편차 문제 — 시장 구조로 본 의약 신뢰 위기”, 머니투데이, 발행일: 2025.10.28 “의약품 리베이트의 구조적 문제와 브랜드 신뢰 왜곡”, 매일경제, 발행일: 2025.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