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5-11-24 | 수정일 : 2025-11-24 | 조회수 : |
한국 교육은 12년 동안 아이들을 정답을 빠르게 찍어내는 로봇으로 길러 왔다. 그런데 대학은 이제 묻는다. “왜 창의적이지 않니?” 더 아이러니한 건, 이 요구가 대학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은 서류에서 창의성을 요구하고, 면접은 창의적 사고력을 묻고, 사회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정답밖에 허락하지 않은 나라에서 창의성은 애초에 자라날 공간조차 없었다. 문제는 학생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창의성을 금지한 사회가, 창의력을 시험하는 이 모순을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조선일보 (2025.11.24) — “수능 성적보다 창의력… 포스텍의 ‘200분 면접’ 실험” 한국경제 (2025.11.18) — “정답 중심 평가 벗어난다… 대학들, 창의력·프로젝트 기반 전형 확대” 중앙일보 (2025.11.12) — “수능 만점자도 문제 해결력 부족… 대학의 우려 커져” 매일경제 (2025.11.10) — “AI 시대, 대학이 원하는 인재 조건이 바뀌고 있다” 동아일보 (2025.11.08) — “정답 교육의 한계… 창의성 강화 요구 거세져” ------------------------------------ 수능이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한국 사회는 잠시 숨을 고른다. “이제 정말 모든 것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부모와 학생 사이에 퍼진다. 하지만 정작 대학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정답을 빠르게 찾는 능력이 아니라, 정답이 없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는지를 보기 위해 면접의 시간을 과감히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상징적 장면이 올해 포스텍이 도입한 200분 창의력 면접이다. 기존 50분의 네 배. 한 문제를 붙잡고 20~30분씩 사고를 전개하는 과정 자체를 평가하는 형식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대학이 원하는 능력이 오랫동안 학교가 길러온 능력과 정반대라는 사실이다. 학교는 12년 동안 ㅇ 빠르게 ㅇ 정확하게 ㅇ 틀리지 않게 정답을 찾는 법을 가르쳤다. 정답이 존재하는 문제만 다뤘고, 틀리는 순간에는 감점·낙제·불이익이 따랐다. 이 구조는 학생들에게 “생각은 위험하고, 정답만이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학습시켰다. 그러나 대학이 직면한 현실은 완전히 달라졌다. AI는 이미 사람보다 더 빨리 정답을 찾아낸다. 정보를 정확하게 암기하고 문제를 빠르게 푸는 능력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의 강점이 아니다. 대학이 요구하는 것은 ㅇ 문제를 재정의하는 능력 ㅇ 보이지 않는 변수를 찾아내는 능력 ㅇ 틀릴 수 있는 시도를 감수하는 용기와 같은 창의적 사고 역량이다. 그런데 모순이 발생한다. 정답 중심 훈련만 받아온 학생에게 갑자기 “이제는 창의력을 보여주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수년간 같은 방식으로 달려온 러너에게 결승선 직전에 “이제는 다른 종목으로 뛰어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학생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이 설계한 한계다. 포스텍의 200분 면접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이는 단순한 면접 시간 확대가 아니라 정답 중심 한국 교육의 모순을 정면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다. 정답 기계로 길러 놓고, 그 기계가 왜 창의적이지 않느냐고 묻는 사회의 딜레마. 이제 우리는 학생이 아니라 시스템을 되돌아봐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아이들을 12년 동안 정답 중심으로 길러 놓고, 대학·기업·사회는 갑자기 “창의적으로 생각해보라”고 요구한다. 이 모순을 가장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교육심리학·인지이론·조직행동론 3개의 이론 축이다. 첫 번째 축은 인지 부하 이론(Cognitive Load Theory)이다. 인간의 사고 자원은 유한하다. 그런데 한국의 학생들은 외워야 할 정보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보 과부하 상황에서 뇌는 ‘창의적 탐색’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내고, 이미 알고 있는 답을 빠르게 꺼내 쓰는 방향으로 최적화된다. 즉, 창의성의 부족이 아니라 창의성을 사용할 여유를 박탈당한 상태인 것이다. 두 번째 축은 고정형 마인드셋(Fixed Mindset)이다. 정답 중심 평가는 오답을 ‘실패’로 규정한다. 아이들은 “틀리면 끝”이라는 규칙을 학습하고, 실험·실수·탐색·질문처럼 창의성의 씨앗을 만드는 행동을 자동으로 회피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창의성이 아니라 생존전략으로서의 순응이 강화된다. 200분 면접처럼 정답이 없는 문제를 마주했을 때 학생들이 얼어붙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창의적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창의성을 사용하면 위험하다고 배운 것이다. 세 번째 축은 조직행동론의 ‘맥락적 성과(Contextual Performance)’ 이론이다. 기업은 성과를 숫자로 관리하기 때문에 안전한 절차와 규칙을 따르는 사람이 보상받는다. 교육은 이 기업 시스템을 그대로 모방해 학생을 ‘정형화된 작업자’처럼 키운다. 결국 대학·기업·사회가 모두 창의성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보상 구조는 창의성을 위험 요소로 취급한다. 그 결과 한국 사회 전체가 ‘정답 기계’를 양산하고, 다시 그 기계에게 창의성을 시험하는 역설이 반복된다.
포스텍의 ‘200분 면접’은 겉으로 보면 단순히 “깊이 있게 질문하는 면접 방식으로 바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변화는 훨씬 더 큰 신호다. 한국 사회가 지난 20년 동안 만들어온 정답 중심 평가 시스템 전체에 대한 구조적 반격이기 때문이다. 수능은 본질적으로 ‘정확히 아는 것’을 측정한다. 정해진 범위·정해진 출제 원리·정해진 오답 패턴을 기반으로 고도의 예측 가능성을 갖춘 시험이다. 문제는, 이 시험에서 최고점을 받도록 설계된 학생일수록 정답과 규칙에 최적화된 두뇌 구조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포스텍 면접관의 말처럼 “한 문제가 던지는 의미를 200분 동안 파고드는 능력”과는 상극의 훈련이다. 이번 뉴스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키웠고, 무엇을 잃었는가?” 1) 깊게 생각하는 능력의 붕괴 — ‘정답의 경제학’ 정답이 빠르게 나올수록 점수가 높아지는 시스템은 사실상 ‘빠른 회전 노동자'를 양성하는 구조다. 이는 경제학에서도 ‘인센티브 구조(Incentive Structure)’ 문제로 설명된다. 사람들은 보상받는 행동만 지속한다. 따라서 12년 동안 ‘정답을 빨리 찾는 아이’가 우등생이었다면, 이 아이는 대학에서 갑자기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을 받는 순간 자신의 강점을 잃어버린다. 이것이 포스텍 면접이 오래 걸리는 이유다. 창의성은 정답을 내는 능력이 아니라 의문을 끝까지 파고들어 하나의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한국 교육은 그 과정을 아예 삭제해 버렸다. 2) 사회 전체가 정답 문화에 중독 — ‘한국형 동형화(Isomorphism)’ 사회학의 동형화 이론에 따르면, 사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특정한 패턴으로 닮아간다. 한국은 교육·직장·공공조직이 모두 정답·속도·순응의 문법으로 정렬되었다. ㅇ 대학: 정답이 있는 시험을 좋아한다 ㅇ 기업: 매뉴얼을 따르는 직원을 좋아한다 ㅇ 공공조직: 변수를 싫어하고 규칙 준수를 보상한다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는 창의성을 ‘구호’로는 좋아하지만, 현실에서는 가장 위험한 행동으로 분류한다. 그래서 포스텍 면접 같은 변화가 나타나는 순간, 오히려 사회 전체가 이를 ‘예외적 사건’으로 바라본다. 즉, 시스템 전체가 정답 중독 상태이기 때문이다. 3) 수능 이후 등장한 ‘창의성 욕망’ — 그러나 훈련은 사라졌다 흥미로운 지점은 대학·기업 모두 ‘창의성을 갖춘 사람’을 뽑고 싶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창의성을 평가할 도구는 마련했지만, 정작 그 창의성을 기르는 과정을 교육 시스템에서 제거했다. 그래서 발생하는 현실적 딜레마는 이것이다. ㅇ 교육은 정답을 요구했다. ㅇ 대학은 사고력을 요구한다. ㅇ 기업은 문제해결력을 요구한다. ㅇ 사회는 창의력과 융합 능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학생은 이 모든 과정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구조에 놓여 있다. 창의성을 기르는 교육 없이, 창의성을 평가하려는 사회는 결국 결과만 요구하는 잔혹한 시스템이 된다. 4) 창의성이 ‘평가 항목’이 되는 순간 - 심리적 역설 심리학에서 ‘성과 압박의 역설(Performance Paradox)’이라 불리는 현상이 있다. 창의성을 “평가받는 항목”으로 만들면, 사람들은 창의적 시도를 줄이고 안전한 답을 찾게 된다. 포스텍의 200분 면접이 사실상 창의성 측정을 목표로 할지라도, 이 위축 효과를 고려하지 않으면 오히려 학생을 더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즉, 한국 사회는 창의성을 하향시키는 환경 + 창의성을 평가하려는 욕망 이라는 최악의 조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5) 한국형 평가가 반드시 다시 질문해야 할 것 뉴스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한국은 정답을 만드는 시스템은 완벽하지만, 질문을 만드는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포스텍의 200분 면접은 이 질문을 다시 꺼낸 사건이다. 단순히 면접 시간을 늘린 것이 아니라, 한국 교육의 전환점을 요구하는 선언이다.

포스텍의 200분 면접은 하나의 대학 실험이 아니다. 이것은 한국 교육이 향후 10년간 어디로 갈지를 보여주는 징후(sign)에 가깝다. 수능이 대표하는 정답 중심 교육의 시대가 서서히 퇴장하고, 질문·추론·해석·창의·맥락을 평가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1) “정답 산업”을 줄이고 “사고력 산업”을 키워야 한다 그동안 한국의 교육 시장은 정답을 빠르게 공급하는 산업(문제집·기출·패턴 분석)에 의해 지배되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정답을 제공하는 상품이 아니라, 생각하는 시간을 제공하는 상품이 필요하다. ㅇ 토론 기반 학습 ㅇ 메타인지 훈련 ㅇ 프로젝트형 문제 ㅇ 질문을 만드는 수업 이런 방식이 학교 교육뿐 아니라 사교육 전반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창의는 “연습이 없는 재능”이 아니라, 환경이 만들고 시간이 만드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2)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창의성은 정답이 없고, 그래서 실패가 필연적이다. 그런데 한국의 학교·기업·사회는 실패를 “낙인”으로 취급한다. 따라서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실패를 허용하는 안전지대를 만들어야 한다. ㅇ 틀려도 페널티가 없는 수업 ㅇ 질문 자체를 평가하는 면접 ㅇ 엉뚱함을 오히려 보상하는 조직 문화 창의성은 ‘성공의 결과’가 아니라 ‘실패의 역사’에서 태어난다. 3) 대학·기업·사회가 동일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 현재 한국의 메시지는 완전히 뒤섞여 있다. ㅇ 대학: 창의적 사고를 보여봐라 ㅇ 기업: 매뉴얼을 정확히 지켜라 ㅇ 사회: 실수하면 책임져라 이것은 젊은 세대에게 서로 모순된 행동 규칙을 주는 셈이다. 창의성은 일관된 메시지 위에서만 자란다. 대학, 기업, 정부가 같은 방향을 향해 말해야 한다. “정답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을 만드는 사람을 원한다.” 이 메시지가 사회 전체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 4) ‘깊은 사고’를 방해하는 환경을 정비해야 한다 스마트폰·알림·짧은 콘텐츠·멀티태스킹 환경은 모두 창의성의 핵심인 심층 집중(Deep Focus)을 파괴한다. 따라서 청소년과 청년에게는 디지털 문해력, 시간 관리, 집중환경 만들기 같은 ‘환경 기반 창의성 교육’이 필요하다. 창의성은 선천적 능력이 아니라, 오래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질 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사고의 흐름이다. 5) 창의성은 ‘평가 항목’이 아니라 ‘학습 방식’이 되어야 한다 포스텍의 200분 면접은 창의성을 평가하려는 시도처럼 보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평가가 아니라 학습 방식 자체의 변화다. ☆ 창의성은 시험의 마지막 5%가 아니라 교육의 첫 95%를 차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미래에도 계속 같은 모순을 반복하게 된다. 정답을 12년 동안 강요한 뒤, 갑자기 창의성을 요구하는 사회. 이 모순을 끝내기 위해서는 평가가 아니라 학습의 철학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포스텍의 200분 면접은 많은 사람들에게 의문을 남긴다. “정말 이렇게까지 길게 면접을 해야 할까?” “창의성은 시험으로 측정할 수 있는 걸까?” “수능이 여전히 존재하는데, 대학이 먼저 바뀌는 게 가능한가?” 그러나 이 질문들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진실과 만나게 된다. 지금의 혼란은 ‘시스템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정답을 빠르게 찾는 능력만으로는 더 이상 미래를 설명할 수 없다. 세상은 더 복잡해졌고, 문제는 더 모호해졌으며, 해결책은 더 다층적이 되었다. 한국 사회가 오랜 시간 붙잡고 있던, “정답을 맞히는 학생이 좋은 학생”이라는 공식은 더 이상 유효한 진리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전환기의 입구에 서 있다. 정답의 시대에서 질문의 시대로 이동하려면, 교육·대학·기업·사회 모두가 익숙한 안정감을 포기해야 한다. 창의성은 불확실함에서 태어나고, 새로운 질문은 안전지대 밖에서 자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다. 창의성은 평가 대상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 생각을 바꾸고, 문제를 다시 보고, 모두가 당연하다고 믿은 것을 다시 묻는 용기에서 창의성은 시작된다. 포스텍의 200분 면접은 딱 하나의 메시지를 던진다. “이제는 질문할 시간이다.” 정답을 외우는 시간을 줄이고, 관찰하고, 의심하고, 서둘러 판단하지 말고 깊이 탐색하는 시간으로 채우라는 요청이다. 언젠가 한국 사회는 수능 점수보다 ‘어떤 질문을 만드는 사람인가’를 더 크게 평가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아마 지금도 조용히, 정답의 공책을 덮고 새로운 질문을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 한국 교육은 12년 동안 학생을 ‘정답 기계’로 만들고, 대학·기업·사회는 뒤늦게 창의성을 요구한다. → 문제는 학생이 아니라 정답 중심 시스템 자체의 구조적 모순이다. ● 포스텍의 ‘200분 면접’은 단순한 면접 확장이 아니라, ‘정답 교육의 종말’을 예고하는 신호다. → 깊이 있는 사고·추론·맥락 이해를 향한 평가 패러다임의 이동. ● 인지 부하·고정형 마인드셋·조직 동형화가 결합해, 한국 사회 전체가 ‘순응을 보상하고 창의성을 위험 요소로 취급’하는 구조로 굳었다. ● 학생들은 창의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창의성을 사용하면 불이익을 받는 환경에서 자라왔다. → 창의성 결핍의 원인은 개인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에 있음. ● 정답 중심 인센티브를 줄이고, 실패를 허용하며, 질문을 중심에 두는 학습 방식이 필요하다. ● 대학·기업·사회가 동일한 메시지를 주지 않으면, 창의성 전환은 다시 실패한다. → “정답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을 만드는 사람”을 보상하는 사회 구조가 필요하다. ● 결국 교육의 목표는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다.
Q1. 포스텍의 ‘200분 면접’은 왜 중요한가요? 단순히 면접 시간이 길어진 것뿐 아닌가요? A. 겉으로 보면 면접 시간이 늘어난 것뿐이지만, 실제 의미는 훨씬 크다. 한국 교육의 핵심 문제는 정답 중심 평가가 사고력을 파괴한다는 사실인데, 200분 면접은 그 정답 구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신호다. 정답을 빠르게 찾는 능력이 아닌,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라는 질문 자체를 평가의 중심에 놓았다. 이는 향후 다른 대학과 조직까지 영향을 미칠 평가 패러다임 전환의 시작점이다. Q2. 학생들이 창의성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시스템인가요? A. 세 가지 축이 결합한다. 정답 중심 시험 구조(오답을 벌점으로 보는 문화)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도·효율·순응을 보상하는 조직 문화 이 구조 속에서 학생들은 창의성을 억누르는 생존 전략을 학습한다. 즉, 창의성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사용하면 손해를 보는 환경 속에 방치된다. Q3. 수능은 여전히 존재하는데, 창의성 평가가 가능할까요? A. 가능하다. 수능은 여전히 ‘기초 학습 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학은 점점 더 “기초 학습 + 창의적 사고력”의 이중 구조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수능만으로 선발하면 문제가 명확히 드러난다. → 정답은 잘 맞추지만 문제를 새로 정의하는 능력은 떨어진다. 그래서 대학들은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서류 + 면접 + 사고력 중심 평가’를 확장하고 있다. Q4. 창의성은 타고나는 건가요? 교육으로 길러질 수 있나요? A. 창의성은 타고나는 능력이 아니라 환경이 만드는 능력이다. 연구에 따르면 창의성의 핵심 요소는 다양한 관점에 노출 실패를 받아들이는 안전지대 긴 호흡의 집중 시간 질문 중심 사고 이다. 즉, 지금 한국 사회가 키우지 못한 요소들이다. 환경만 바뀌면 창의성은 누구에게나 자란다. Q5. 200분 면접이 더 ‘부담’만 주는 것 아닌가요? 학생 스트레스를 가중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는데요. A. “창의성을 평가함으로써 창의성을 위축시키는 역설”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래서 면접 방식은 정답이 없는 문제 접근 과정 자체를 평가 탐색적 사고를 유도하는 피드백 형태로 설계되어야 한다. 중요한 건 정답을 맞히는 게 아니라 ‘생각의 여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설계된다면 부담은 줄고, 교육적 효과는 커진다. Q6. 기업들도 창의성을 요구한다는데, 학교와 기업이 바라보는 창의성은 같은 건가요? A. 지금은 다르다. 기업은 창의성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매뉴얼 준수와 리스크 회피를 더 보상한다. 학교는 창의성 교육을 말하지만 실제 수업 구조는 정답·속도·효율에 맞춰져 있다. 즉, 대학·기업·사회가 ‘창의성’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모두 다른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앞으로는 세 영역 모두에서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사람을 보상한다”는 방향으로 정렬되어야 한다. Q7. 결국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하나요? 정답 중심 교육의 시대는 끝낼 수 있을까요? A. 핵심은 평가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평가가 바뀌면 → 수업이 바뀌고 → 학습이 바뀌고 → 학생의 사고 구조가 바뀌고 → 기업의 요구까지 바뀐다. 평가가 모든 것을 움직인다. 포스텍의 실험은 바로 그 시작이다. 정답의 시대를 끝내는 유일한 길은, ‘질문을 평가하는 시대’를 여는 것이다.
① “영어·코딩·수학… 아이들은 왜 ‘완제품’이 되어야 하나?”, 블로그 [In the News], 2025.11.21 정답 중심 조기교육의 구조적 문제, 그리고 아이들의 창의성·정서·탐색 능력이 어떻게 희생되는지를 분석. 이번 글의 ‘정답 시스템 비판’과 완전히 연결되는 전편 격 글. ② OECD Education 2030 보고서: “미래 역량의 핵심은 창의적 문제 해결”, OECD, 2025.06 국가 교육정책의 핵심이 “정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국제 보고서. 한국형 평가의 전환이 왜 늦었는지, 그리고 왜 반드시 바뀌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근거 자료. ③ “수능 성적보다 창의력… 포스텍의 ‘200분 면접’ 실험”, 조선일보, 2025.11.24 이번 글의 핵심 뉴스. 정답 중심 평가 시대의 한계와, 대학이 새롭게 평가하려는 가치가 정확히 드러나는 문서. ④ “한국 기업의 ‘창의적 인재’ 채용 실패: 매뉴얼 문화의 덫”, 한국경제, 2025.09.18 기업이 창의적 인재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채용·조직문화는 여전히 순응을 보상하는 구조라는 비판적 분석. 이번 글의 “사회·직장도 창의성을 요구하지만 실제로는 억압한다”는 맥락에 필수적으로 연결되는 자료. ⑤ “Deep Work 시대의 몰입: 집중 환경이 창의성을 만든다”, MIT Technology Review, 2024.12 디지털 환경이 어떻게 사고의 깊이를 파괴하는지, 창의성을 회복하려면 어떤 ‘인지적 조건’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설명. 한국의 교육·기업 환경에서 심층 사고가 사라진 현실과 직접적으로 이어짐. ⑥ “The Tyranny of Metrics — 평가가 사고를 어떻게 가두는가”, 프린스턴 대학교 출판부, 2023 정량 평가 중심 사회가 창의력·질문·탐색을 어떻게 훼손하는지 다룬 대표적 연구서. 한국 수능·입시·기업평가와 구조적으로 유사한 통찰을 제공. ⑦ “AI 의존 사회의 인지적 취약성 — 우리는 왜 스스로 ‘고장 나기 쉬운 인간’이 되었는가?”, 블로그 [In the News] 2025.11.22 AI 편의성에 익숙해질수록 인간의 사고력이 어떻게 약화되는지 분석. 창의성 전환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함께 읽어야 하는 문제의식. ⑧ “문해력 논란에서 우리가 놓친 것 — 읽기 방식의 재편”, 중앙일보, 2025.11.20 문해력 위기가 아이들의 능력이 아니라 ‘환경 변화’에서 비롯된 현상이라는 분석. 정답 중심 사회가 사고의 방식을 어떻게 바꾸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