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6-02-11 | 수정일 : 2026-02-11 | 조회수 : 5 |
도시의 효율성과 질서가 강화될수록 개인은 스스로를 더 강하게 검열하게 되며, 이는 ‘사회적 표백(Social Whitening)’이라는 새로운 통제 구조를 낳고 있다.

도시는 점점 더 조용해지고 있다. 질서정연하고, 빠르고, 효율적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이렇게 살기 편해졌는데도, 사람들은 더 숨을 죽이고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질까.
최근 한 언론 보도에서 일본의 정신과 전문의는 서울과 도쿄를 두고 “쾌적함을 미끼로 인간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를 ‘사회적 표백’이라고 불렀다. 키오스크 앞에서 손이 떨리고, 카페에서 목소리를 낮추고, 지하철에서 누군가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조절하는 모습. 효율적인 도시일수록 개인은 스스로를 더 많이 검열해야 한다는 역설. 이 보도는 단순한 도시 비판이 아니다. 이것은 현대 사회의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다.
이 현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 푸코의 ‘규율 사회’ (Disciplinary Society, Michel Foucault) 미셸 푸코는 근대 사회를 “감시가 외부에서 내부로 이동한 사회”라고 설명했다. 감옥이나 군대처럼 강제적 통제 대신, 사람들이 스스로를 감시하고 스스로를 교정하는 구조. 키오스크 앞에서 조급해지는 마음, 줄을 오래 서 있으면 죄인이 된 듯한 감정. 이것은 강압이 아니라 내면화된 규율이다. 2️⃣ 자기 검열과 ‘파놉티콘 효과’ (Panopticon Effect) 벤담의 파놉티콘은 “누군가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만으로 사람을 순응하게 만드는 구조다. 오늘날 우리는 CCTV 때문이 아니라 ‘타인에게 민폐가 되지 말라’는 문화적 압력 때문에 스스로를 줄인다. 도시는 외부의 감시보다 내부의 눈을 더 강하게 키워왔다. 3️⃣ 효율성 숭배와 ‘도구적 합리성’ (Instrumental Rationality) 막스 베버는 근대 사회가 ‘도구적 합리성’에 지배된다고 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최우선 가치가 된다. 느림, 서툼, 실수, 소음은 비합리적 요소로 취급된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비효율적 존재다. 4️⃣ 사회적 표백과 정체성의 단순화 ‘무해한 시민’은 타인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으며, 빠르고 정확하게 시스템에 적응하는 존재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다양성, 개성, 감정의 굴곡은 도시에 불편한 변수로 취급된다. 표백은 안전하지만, 동시에 무채색이다. 5️⃣ 도시의 역설 도시는 점점 더 쾌적해진다. 하지만 개인은 점점 더 긴장한다. 질서는 강화되지만 자율성은 줄어든다. 이것이 현대 도시의 아이러니다.
쾌적한 사회는 좋은 사회일까. 혹시 우리는 ‘불쾌함을 견디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느린 사람, 서툰 사람, 감정이 많은 사람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시가 완벽해질수록 인간은 더 작아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지금, 질서를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질서에 맞게 개조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