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작성일 : 2025-09-20 | 수정일 : 2025-09-20 | 조회수 : 20 |
서울의 어느 금요일 오후, 한 IT기업 직원들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한다. 일부 기업과 지자체가 주 4일제나 단축 근로를 시험적으로 도입하면서, 짧아진 근무시간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직원들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자기계발에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현장에서는 정반대의 이야기가 들린다. 인구 감소로 경제 활력이 떨어지자 “하루를 더 일해야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덜 일하자는 목소리와 더 일하자는 목소리가 정면으로 부딪히는 현실, 이것이 지금 한국 사회가 직면한 딜레마다. 숫자는 냉정하다. 합계출산율 0.65, 세계 최저 수준. 생산가능인구는 이미 줄어들기 시작했고, 불과 십여 년 뒤에는 국민 셋 중 한 명이 노인이 된다. 한때 “인구 보너스”라 불렸던 젊은 세대의 힘은 사라지고, “인구 절벽”이라는 단어가 일상이 되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줄어든 운동장, 학생 수 감소로 통폐합되는 학교, 은퇴자가 늘어난 도시 풍경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우리의 현재이자 미래다. 경제 충격은 뚜렷하다. 청년은 줄고 노인은 늘어난다. 세금과 사회보험 부담은 커지고, 소비와 투자는 줄어든다. 신혼부부는 주거비와 양육비 부담에 출산을 미루고, 은퇴한 노인은 생계를 위해 편의점이나 경비실에서 다시 일을 시작한다. 기업은 내수 위축으로 매출이 줄자 설비 투자를 꺼리고, 인구와 직결된 산업들은 연쇄 타격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를 더 일하자”는 주장은 당장의 GDP를 지탱할 수 있지만, 삶의 질 악화와 저출산 심화라는 부작용을 불러온다. 반대로 주 4일제나 4.5일제 논의는 삶의 만족도를 높이고 생산성 혁신을 자극할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경제 지표의 둔화 우려가 뒤따른다. 세계 각국의 대응은 다양하다. 일본은 장시간 노동이 출산 기피로 이어지자, 로봇·AI·자동화를 대대적으로 도입해 돌파구를 찾았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주 35시간제, 주 4일제를 시행하며 “덜 일해도 잘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제도화했다. 스페인은 시에도 문화에서 착안해 여유 있는 삶과 생산성을 조화시키려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일부 기업은 주 4일제를 시범 도입해 직원 만족도와 생산성 향상 효과를 확인했다. 독일은 숙련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북유럽은 교육 혁신으로 소수의 노동자가 다수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결론은 명확하다. 오래 일하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한국도 기로에 서 있다.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기록하는 나라에서 하루를 더 일한다면, 단기적 성장률은 지켜낼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저출산과 인구 감소를 가속화할 수 있다. 반대로 노동시간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한다면, 당장은 성장 지표가 흔들려도 장기적으로는 더 건강한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과 로봇, 자동화 같은 기술이 핵심 역할을 한다. 사무실에서는 AI가 보고서를 작성하고, 공장에서는 로봇이 생산을 돕는다. 고령층은 은퇴 후에도 파트타임으로 기여할 수 있고, 숙련된 이민자는 부족한 노동력을 보완할 수 있다. 2035년 서울을 떠올려 보자. 한쪽 도시는 토요일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사무실로 가득하다. 과로에 지친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했고, 거리는 노인들로 넘쳐난다. 그러나 다른 도시는 다르다. 금요일 오후 사무실 불이 꺼지고, 가족들이 공원에 모인다. 노인은 은퇴 후에도 경험을 살려 사회에 기여하고, 다양한 배경의 이민자들이 지역 공동체를 활기차게 만든다. 어느 미래가 현실이 될지는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인구 감소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쇠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루를 더 일하며 가까스로 버티는 사회가 될 것인지, 아니면 덜 일하면서도 더 잘 사는 사회가 될 것인지는 우리의 결정에 달려 있다. 인구 감소는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다. 오늘의 결단이 한국의 내일을 바꿀 것이다.
“4.5일제? 고령화 진행 중인 한국은 되레 하루 더 일해야 성장 유지 가능” (조선일보, 2025.9.20) “주 4일제 논의 확산, 노동시간 단축이 해법 될까” (한겨레, 2025.8.10) “세계 최저 출산율 한국, 생산가능인구 10년 새 300만 명 감소” (연합뉴스, 2025.7.22) “Japan turns to robots to soften blow of aging workforce” (Nikkei Asia, 2025.6.15) “France debates 4-day workweek as productivity challenge looms” (Le Monde, 2025.5.30) -------------------------------------------------- 아침 출근길 지하철, 창밖 풍경은 익숙하지만 객차 안은 변해 있다. 예전처럼 대학생과 청년 직장인으로 붐비던 자리는 줄고, 머리 희끗한 노인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가장 큰 변화,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일상의 장면 속에서도 드러난다. 이 거대한 전환은 경제의 기초를 흔들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사람이 줄어드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얼마나 일할 것인가’라는 노동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근로시간을 줄여야 저출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삶의 여유가 있어야 결혼과 출산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성장을 지탱하려면 하루라도 더 일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분석이 고개를 든다. 덜 일해야 하는가, 더 일해야 하는가. 사회는 정반대의 주장을 두고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이 논쟁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장시간 노동은 이미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지목돼 왔다. 세계 최장 수준의 근로시간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젊은 세대의 출산 기피를 부추겼다. 반면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단기적 성장은 위축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건강한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도 크다. 이 모순적인 상황은 인구 구조 변화와 경제 성장 사이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세계는 이 문제를 각자의 방식으로 풀고 있다. 일본은 장시간 노동의 대가로 극심한 저출산을 맞았고, 결국 로봇과 자동화에 의존하는 길을 택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면서도, 생산성과 고용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병행했다. 북유럽은 교육과 복지를 강화해 소수의 인력이 다수의 가치를 창출하도록 했다. 이처럼 노동시간과 경제 성장은 단순히 반비례하거나 정비례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가 어떤 미래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 한국은 기로에 서 있다. 하루를 더 일하며 경제 수치를 지켜낼 것인가, 아니면 덜 일하면서 새로운 혁신과 효율을 모색할 것인가. 이 문제는 단순한 근로제도의 개편을 넘어, 한국 사회가 어떤 삶을 추구할 것인가라는 더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경제학에서 성장의 동력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모델 가운데 하나가 솔로우 성장모형이다. 이 모형은 경제가 장기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떤 요인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를 세 가지 요소로 나눈다. 바로 노동, 자본, 그리고 기술이다. 노동은 사람의 수와 일할 능력을 의미하고, 자본은 기계·건물·인프라 같은 물적 자산을 뜻한다. 기술은 생산 방식을 개선하고 효율을 높이는 힘이다. 이 세 가지가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한 나라의 성장 경로가 달라진다는 것이 솔로우의 기본 명제다. 단기적으로는 자본과 노동 투입이 경제를 움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결국 기술 진보가 가장 중요한 성장의 원천이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후 학자들은 “노동”이라는 요소를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았다. 단순히 인구 수나 노동시간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얼마나 숙련되고 창의적인가에 따라 경제의 성과가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인적 자본 이론이다. 교육, 건강, 경험, 기술 습득, 창의성 같은 무형의 자산이 노동력의 질을 결정한다는 관점이다. 두 명의 노동자가 같은 시간을 일해도 한 명은 높은 교육과 기술을 바탕으로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면, 단순한 ‘수의 경제’가 아닌 ‘질의 경제’가 가능해진다. 인적 자본은 그래서 물적 자본 못지않게 중요하며, 때로는 더 강력한 성장 요인이 된다. 또 하나 주목할 이론은 노동-여가 균형 이론이다. 경제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단순히 임금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만족을 위해 여가를 얼마나 확보하느냐를 함께 고려한다는 점을 지적해 왔다. 노동과 여가는 서로 대체 관계에 있다. 노동을 늘리면 당장의 소득은 증가하지만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이고, 여가를 늘리면 소득은 줄지만 삶의 만족은 커진다. 어느 지점에서 균형을 잡느냐는 사회적·문화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역사적으로 산업혁명 이후 노동시간이 점점 단축되어 온 흐름은, 경제 성장과 함께 인간이 단순한 생계 유지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중시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세 가지 이론은 서로 다른 관점을 제공하지만, 공통적으로 경제 성장의 본질이 단순한 수량적 확대에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솔로우 성장모형은 기술이 장기 성장의 핵심임을 강조하고, 인적 자본 이론은 사람 한 명 한 명의 질적 성장에 주목하며, 노동-여가 균형 이론은 경제적 성과와 삶의 만족 사이의 균형을 묻는다. 이 세 가지 이론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여러 사회적 딜레마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유의 틀을 제공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불붙은 논쟁은 단순히 “노동시간을 줄일 것인가, 늘릴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흐름과, 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시각 차이가 얽혀 있다. 언론에서는 “주 4.5일제”라는 실험적 제안과 “하루를 더 일해야 한다”는 반대 주장이 나란히 다뤄지고 있다. 이 두 주장 모두 어느 정도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지만, 각각이 만들어낼 파급 효과는 전혀 다르다. 경제학적 이론의 틀을 빌리면 이 상황을 더 선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우선 솔로우 성장모형을 적용해 보자. 이 모형은 경제 성장이 노동, 자본, 기술의 세 가지 축으로 이루어진다고 본다. 한국의 경우 가장 급격히 흔들리고 있는 축은 ‘노동’이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 단순히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한다고 해서 성장률을 유지할 수 없다. 하루를 더 일하자는 주장은 노동 투입량을 늘려 성장 하락을 늦추려는 시도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오히려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 없이는 노동 총량 증가만으로는 성장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솔로우의 결론이다. 다음은 인적 자본 이론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의 수보다 질이다. 더 오래 일하게 만드는 정책은 단기적으로 노동량을 늘리는 효과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젊은 세대의 교육·창의성·가족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노동시간을 줄이면 개인이 자기계발, 건강, 가족 관계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이것은 인적 자본의 축적을 통해 장기적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한 청년은 매일 밤 10시가 넘어 퇴근하며 “결혼은커녕 자기계발할 시간조차 없다”고 토로한다. 반면 단축 근무를 시범 도입한 기업의 직원은 “주말에 대학원 수업을 듣고, 가족과 여행도 다닐 수 있어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말한다. 두 사회가 10년 뒤 어떤 성과를 낼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노동-여가 균형 이론이 던지는 메시지도 무겁다. 사람은 단순히 임금 때문에 일하는 기계가 아니다. 여가와 휴식은 창의성, 집중력, 삶의 만족을 높이는 원천이다. 세계 최장 수준의 노동시간 속에서 하루를 더 일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GDP 지표를 떠받칠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피로 누적과 출산율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는 다시 인구 감소를 가속화하고, 결국 성장의 토대를 더 빠르게 무너뜨린다. 반대로 노동시간을 줄여도 생산성 혁신이 뒷받침된다면 오히려 ‘덜 일하고 더 성장하는’ 길이 열릴 수 있다. 실제로 해외 사례는 이를 뒷받침한다. 일본은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았지만, 그 결과는 출산 기피와 인구 고령화였다. 결국 일본 기업들은 로봇과 자동화를 대대적으로 도입하며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주 35시간제, 주 4일제 도입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했지만, 생산성과 고용이 유지되거나 개선되는 효과를 거두었다. 아이슬란드는 주 4일제를 국가 차원에서 실험하며 공무원과 민간 기업의 성과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싱가포르는 적극적인 이민 정책으로 부족한 노동력을 보완하며 인구 구조 불균형을 완화하고 있다. 독일은 숙련 이민자를 받아들이면서 고령화 속도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경쟁력을 지켰다. 반면 대응이 늦은 이탈리아와 중국은 성장 정체와 고령화 충격을 동시에 겪고 있다. 이 사례들을 보면, 한국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하루를 더 일하자는 주장은 단기적 불안을 달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장시간 노동은 청년층의 결혼·출산 포기로 이어지고, 저출산과 인구 감소는 더 가속화된다. 반대로 4.5일제 같은 단축 근무는 단기적으로 경제 지표에 부담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여가 확대와 삶의 질 개선이 인적 자본 축적을 촉진하고, 장기적으로는 생산성과 출산율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2035년의 한국을 두 개의 무대로 상상해 보자. 한 무대는 토요일까지 불 꺼지지 않는 사무실이다. 청년들은 과로로 지쳐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거리는 노인들로 가득하다. 다른 무대는 금요일 오후 일찍 퇴근한 가족들이 공원에 모여 웃고, 청년들은 주말에 새로운 기술을 배우며 창업을 준비한다. 은퇴한 노인은 경험을 살려 지역 사회를 이끌고, 다양한 배경의 이민자들이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한국 사회는 지금 이 두 무대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 갈림길에 서 있다. 결국 인구 감소와 경제 성장, 그리고 노동시간 논쟁은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고리에 연결된 연쇄 반응이다. 단기적 성장률을 지키려 하루를 더 일할 것인지, 장기적 지속 가능성을 위해 효율과 혁신에 투자할 것인지. 지금의 선택이 기차의 분기점을 바꾸듯, 한국의 미래 궤적을 갈라놓을 것이다.
인구 감소와 노동시간 논쟁은 단순히 근로제도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어떤 미래를 그릴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자, 경제와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분기점이다. 당장의 성장률을 지키려는 조급함과 장기적 구조 개혁을 통한 지속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핵심 과제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시사점과 제언을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노동시간 정책의 방향은 단순 연장이 아니라 효율적 단축에 맞춰져야 한다. 하루를 더 일하는 방식은 당장은 GDP를 지탱할 수 있지만, 청년층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저출산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주 4.5일제나 주 4일제 같은 단축 근무제는 단기적으로는 혼란을 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생산성 혁신과 삶의 질 향상을 동시에 이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줄이느냐, 늘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가라는 관점의 전환이다. 둘째,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가 필수적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사회에서는 사람의 수보다 질이 중요하다. 청년층의 교육 기회 확대, 직장인의 재교육과 전환 훈련, 건강과 복지 투자 모두가 장기 성장의 토대를 강화한다. 단축된 노동시간을 자기계발과 학습, 창의적 활동으로 이어지게 한다면, 노동력 감소를 질적 향상으로 상쇄할 수 있다. 셋째, 기술과 자동화의 적극적 활용이 필요하다. 이미 많은 산업 현장에서 인공지능, 로봇, 자동화 설비가 노동력을 대체하고 있다. 단순히 일손 부족을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확산시켜야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한 인프라 투자와 기업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하고, 개인은 기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평생학습 체계를 갖춰야 한다. 넷째, 고령층과 이민자의 노동시장 참여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고령층은 은퇴 이후에도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파트타임 근무,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멘토링 시스템 등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다. 또한 숙련된 이민자 유입은 부족한 노동력을 보완하고, 다양성을 통해 혁신을 촉진할 수 있다. 다만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와 문화적 수용성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합의와 인식 전환이 가장 중요하다. 노동시간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경제지표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 가족의 형태, 세대 간 연대와 같은 가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더 오래 일해야 산다”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덜 일해도 더 잘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은 모래시계의 한가운데 서 있다. 빠져나가는 모래를 붙잡기 위해 손바닥을 움켜쥐면 모래는 더 빠르게 새어나가지만, 새로운 그릇을 마련하면 흐름은 달라진다. 인구 감소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이지만, 그 안에서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효율적 노동, 인적 자본 강화, 기술 혁신, 포용적 사회 구조가 맞물릴 때, 한국은 인구 절벽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늦가을 저녁, 도심 한복판의 퇴근길 풍경을 떠올려 본다. 회색빛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이 무거운 걸음을 옮기고, 지하철 안은 피곤에 절은 얼굴들로 가득하다. 반면 시골의 작은 마을 길에는 주름진 얼굴의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눈다. 두 장면 모두 한국 사회의 오늘을 담고 있다. 젊은 세대는 일에 지쳐 숨 쉴 틈이 없고, 마을은 점점 늙어가고 있다. 인구 감소와 장시간 노동이라는 두 현실이 교차하면서 우리 사회의 무게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러나 미래가 반드시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같은 저녁 시간, 어떤 회사의 사무실은 불이 일찍 꺼지고, 직원들은 가족과 함께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웃음을 나눈다. 대학원 강의실에는 퇴근 후 자기계발에 나선 직장인들이 있고, 공원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퍼진다. 덜 일하면서도 더 창의적으로, 더 충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이다. 오늘 우리가 선택한다면, 이러한 미래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다. 역사는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었다. 산업화의 길을 걸으며 한국은 짧은 시간에 기적 같은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삶의 균형은 종종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질문 앞에 서 있다. 더 오래 일하며 과거의 방식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덜 일하면서도 더 잘 사는 새로운 길을 열 것인가. 그 선택은 단순히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각자가 어떤 삶을 원하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인구 감소는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다. 그러나 그것이 쇠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회 전체가 더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방향으로 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기술은 우리의 노동을 대신해줄 수 있고,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는 더 높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는 일이다. 고령층은 경험으로, 청년은 혁신으로, 이민자는 다양성으로 기여할 수 있다면, 한국은 인구 절벽 앞에서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 수 있다. 에필로그는 언제나 독자에게 질문을 남긴다. “당신은 어떤 미래를 원합니까?” 더 오래 일하며 지쳐가는 삶일까, 아니면 덜 일하면서도 더 행복한 삶일까. 선택의 무게는 가볍지 않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우리가 지금 내리는 결정이 다음 세대의 삶을 바꾸고, 한국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밤하늘에 두 개의 별이 빛난다. 하나는 ‘과거의 방식’을 상징한다. 무한한 노동과 희생으로 지켜온 성장의 별이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방식’을 의미한다. 균형과 효율, 삶의 질을 바탕으로 빛나는 별이다. 이제 우리는 어느 별을 따라갈지 선택해야 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지는 지금 우리의 결단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