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작성일 : 2025-08-21 | 수정일 : 2025-08-21 | 조회수 : 26 |
‘11살의 기후 소송’이 불러온 전례 없는 물음 [The Guardian,2025.8.16] ‘A structural dependence on heavy industry’: can South Korea wean itself off fossil fuels? ------------------------------------------- 2025년 여름, 한국의 법정은 낯선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원고석에는 중후한 변호사단이나 이익단체가 아니라,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11살 소년과 그의 친구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작은 손으로 쥔 서류에는 거대 철강기업 포스코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들의 목소리는 떨림 속에서도 분명했습니다. “우리는 단지 살고 싶습니다. 숨 쉴 권리, 건강할 권리, 미래를 선택할 권리를 지켜주세요.” 이 장면은 단순한 법적 절차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대의 균열을 드러내는 상징이자,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입니다. 지금 이 아이들은, 과거 어른들이 “미래를 위해 경제성장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만든 환경적 부채를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 첫 번째 세대입니다. 더 이상 ‘환경 문제’라는 단어로는 이 불균형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세대 정의의 문제, 곧 “한 세대가 다음 세대의 생존 조건을 파괴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입니다. 돌이켜보면, 한국 사회는 늘 경제 성장과 산업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청정 공기는 대기오염으로, 풍요로운 계절은 폭염과 한파로, 안정된 생활은 기후 불안정으로 변했습니다. 어른들은 늘 “나중에 기술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말했지만, 정작 나중에 살아가야 하는 것은 이 아이들입니다. 기술의 약속이 지연될수록 그들의 생존 가능성은 더 축소됩니다. 이번 소송은 바로 그 절망 속에서 던져진 희망의 몸짓입니다. 아직 투표권조차 없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법정에 나서야 하는 현실은 역설적이면서도 충격적입니다. 그것은 어른 세대의 무책임을 고발하는 동시에, “기후 위기는 이미 다음 세대의 생존권을 잠식하고 있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과연 이 사회는, 아이들에게 미래를 빚지고 있는가? 아니면 아이들이 미래를 어른들에게 구걸해야 하는가? 이 질문을 외면한다면, 한국 사회는 더 이상 ‘선진국’이라 불릴 자격조차 잃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진국의 조건은 GDP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수 있는가로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1. 법학적 관점 – 세대 간 정의와 기본권 보호 법학에서는 세대 간 정의(Intergenerational Justice)가 핵심 개념으로 다뤄집니다. 이는 헌법학과 인권법에서 발전해온 개념으로, “현재 세대가 미래 세대의 생존 조건과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특히 국제인권법에서는 환경권(Environmental Rights)을 단순한 ‘환경 보호’가 아닌 ‘생존할 권리’와 연결합니다. 또한, 헌법학적으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미래 세대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보호의무(duty of protection)가 있음을 강조합니다. 2. 정치학적 관점 – 세대 계약과 민주적 정당성 정치학에서는 이를 세대 간 사회계약(Intergenerational Social Contract)의 문제로 접근합니다. 민주주의는 대체로 현세대 유권자의 투표를 통해 정책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같은 문제는 아직 투표권조차 없는 세대에게 장기적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전통적 민주주의가 갖는 ‘현재 세대 편향(presentism)’을 극복하기 위한 정치 이론이 필요합니다. 일부 정치학자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래세대 대의기구(Future Generations Council)”와 같은 새로운 제도적 장치를 제안합니다. 3. 사회학적 관점 – 위험사회와 사회적 책임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현대를 “위험사회(Risk Society)”라고 정의했습니다. 과거 산업사회는 부의 생산과 분배가 중심이었지만, 오늘날 사회는 기술과 산업이 만들어낸 예측 불가능한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되었습니다. 기후위기는 바로 이러한 위험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은 위험의 불평등한 분배입니다. 기후위기의 피해는 저소득층, 취약계층, 그리고 미래세대가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떠안습니다. 이는 사회적 책임론에서 중요한 불평등 구조를 드러냅니다.
1. 법학적 해석 – 헌법적 권리와 책임의 재구성 청소년들이 제기한 기후소송은 단순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가 아닙니다. 이는 헌법적 권리를 새롭게 해석하도록 강제하는 도전입니다. 지금까지 헌법은 주로 현재 세대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장치로 작동했습니다. 그러나 기후위기 상황에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가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포스코를 비롯한 대규모 산업기업의 탄소 배출은 현재 세대의 이익을 위한 활동이지만, 동시에 미래 세대의 생존을 위협합니다. 따라서 법학적으로 이번 소송은 환경권을 생존권의 일부로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법원이 이를 인정한다면, 앞으로 기업은 단순히 현재의 법규를 준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세대 간 책임을 져야 하는 새로운 법적 의무가 부여될 수 있습니다. 2. 정치학적 해석 – 민주주의의 세대 불평등 기후위기의 본질은 정치학적으로 ‘현재 세대 민주주의의 편향성’ 문제와 직결됩니다. 오늘날의 의사결정은 선거권을 가진 성인 세대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나 기후정책은 30년, 50년 후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안입니다. 투표권이 없는 청소년과 미성년자는 이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이번 소송은 단순히 법정 싸움이 아니라, 정치적 대표성의 결핍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민주주의 제도가 미래세대의 권리를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정치학에서는 “미래세대 대의기구”나 “청소년 의회” 같은 새로운 제도를 제안해왔습니다.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도 이러한 논의가 본격화될 필요성을 보여줍니다. 3. 사회학적 해석 – 위험사회의 불평등한 부담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이론을 적용하면, 기후위기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위험의 사회적 분배 문제입니다. 탄소를 많이 배출한 산업 주체와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기후위기의 피해를 적게 입을 수도 있지만, 피해는 취약계층과 청소년, 미래세대에게 집중됩니다. 이번 소송에서 11살 원고가 법정에 선 것은, 바로 이러한 불평등 구조에 대한 저항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이는 “기후위기의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된다”는 현실을 제도적 장치로 되돌리려는 시도입니다. 한국 사회가 만약 이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미래 세대의 불만은 정치적 저항이나 사회적 갈등으로 폭발할 가능성이 큽니다. 4. 종합적 분석 – 한국 사회에 던지는 경고 이번 청소년 기후소송은 단순히 한 기업과 원고 개인의 법적 다툼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 구조적 질문을 던집니다. “국가는 누구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는가?” “현재의 경제 성장이 미래 세대를 파괴하는 것은 아닌가?” “민주주의는 정말 모든 세대를 대변하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단순히 이론적 논의가 아니라, 법정에서, 그리고 사회적 담론 속에서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기후위기를 둘러싼 세대 간 정의의 시험대이며, 한국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1. 정책적 제언 – 법과 제도의 대전환 기후권 보장 헌법화: 헌법에 “미래세대의 환경권”을 명시하고, 국가와 기업의 의무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후 손해배상 제도화: 탄소 배출로 인한 피해에 대해 집단소송이나 환경세를 통해 피해자 구제와 가해자 부담의 원칙을 확립해야 합니다. 정책결정의 세대 교정: 국회 내 “미래세대 위원회” 신설, 국가 장기계획에 청소년 참여 보장 등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2. 기업과 산업계 – 책임의 새로운 기준 기업은 더 이상 “법을 준수했는가”만으로 정당성을 입증할 수 없습니다. 탄소배출 공시 의무화를 통해 기업의 기후 영향을 투명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ESG 경영은 단순한 홍보가 아니라, 법적·사회적 의무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특히 대기업은 “세대 간 책임”을 기업철학에 포함해야 하며, 배출 감축 계획을 법적으로 검증받아야 합니다. 3. 사회·문화적 차원 – 시민사회의 역할 청소년의 목소리가 법정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교육 현장에서 기후시민교육을 정규과정으로 도입하여, 학생들이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시민단체와 언론은 이번 소송을 단발적 사건이 아닌 지속적 사회담론으로 확산시켜야 합니다. 기후위기를 단순히 “환경문제”로 축소하지 않고, 인권·경제·사회적 정의 문제로 인식 전환을 만들어야 합니다. 4. 국제적 연대 – 글로벌 책임 공유 한국 청소년의 소송은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와 연계해 기후소송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판례와 자료를 공유해야 합니다. 선진국과 다국적 기업에 대한 국제적 책임 요구가 강화되어야 합니다.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단순히 피해자가 아니라 책임 있는 행동 주체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5. 종합적 제언 – 세대 간 정의를 향하여 이번 사건은 “누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한국 사회 전체에 던졌습니다. 국가, 기업, 사회 모두가 이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사회계약을 논의할 시점입니다.
청소년들의 법정 도전은 단순한 소송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어른 세대에게 던져진 거울이며, 동시에 아직 오지 않은 내일 세대의 절규입니다. 법정에 선 11살 원고는 법률 문구나 통계 수치를 넘어, “우리가 남겨줄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후위기를 논할 때 우리는 너무도 쉽게 ‘국가적 목표치’나 ‘탄소 중립 연도’와 같은 거대한 숫자 뒤로 숨곤 했습니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더 이상 추상적 수치나 정책의 언어로만 다뤄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아이들이 숨쉬는 공기, 마시는 물, 걸어 다니는 땅과 직결된 삶의 문제입니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 불편한 진실을 드러냅니다. 청소년이 법정으로 내몰려야 할 정도로, 어른들은 충분히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책임을 외면한다면, 결국 우리가 마주할 것은 돌이킬 수 없는 비용과 상실일 것입니다. 이제 남은 선택은 분명합니다. 기후위기를 ‘환경의 문제’로만 보던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사회 정의·세대 정의·국제 정의의 문제로 확대해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해답은 법정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 모든 결정에서, 정책과 경제 구조, 문화와 교육에서 만들어 가야 합니다. 11살 원고가 던진 질문은 법정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 전체,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질문입니다. “당신은 미래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남기고 싶은가?” 그 질문 앞에서 더 이상 우리는 침묵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