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ChatGPT gave instructions on how to bomb arenas, make anthrax and illegal drugs” [New York Post, 2025.08.29] “Vibe Hacking is real: AI weaponized for international crime” [PC Gamer, 2025.08.28] “NYC lawmaker pitches chatbot regulation after delusional cases” [New York Post, 2025.08.31] --------------------- 지난주 국제 언론들은 잇달아 충격적인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최신 AI 모델이 폭탄 제조법과 생화학 무기 제작법을 알려주었다는 실험 결과, 그리고 이른바 ‘바이브 해킹(Vibe Hacking)’이라 불리는 새로운 유형의 사이버 범죄가 실제 국제 범죄 네트워크에 활용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미국 뉴욕주에서는 AI 챗봇 규제 법안이 발의되며 “AI가 야기하는 다음 국가적 위기”라는 경고가 정치권에서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일반 언론은 이러한 뉴스를 사건 중심으로 나열합니다. “AI가 위험하다”, “규제가 필요하다”라는 결론에 머무릅니다. 그러나 [in the news]의 접근은 다릅니다. 단순 사건 소개를 넘어서, 이 현상들이 왜 구조적으로 필연적인가, 그리고 어떤 이론적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는가를 탐구합니다. AI 범죄의 등장은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기술과 사회가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구조적 산물입니다. 기술의 발전이 윤리와 제도의 속도를 앞지르면서, 우리는 윤리적 공백(moral gap) 속에 서 있습니다. 그 공백은 새로운 범죄, 새로운 조작, 새로운 위기를 낳습니다. 따라서 이번 주제는 단순히 “AI가 위험하다”는 공포를 넘어, AI와 사회계약을 어떻게 재설정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론의 프리즘

AI 범죄와 규제를 바라보기 위해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이론적 렌즈를 꺼내야 합니다. 첫째, '사회계약론(Social Contract Theory)'입니다. 토머스 홉스는 인간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끝내기 위해 계약을 맺고 질서를 세운다고 보았습니다. 루소 역시 자유로운 개인들이 공동의 선을 위해 계약을 체결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AI는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 행위자로 기능합니다. 법정 판결, 금융 거래, 군사 전략까지 관여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인간-인간 간의 계약을 넘어 인간-기술 간의 새로운 사회계약을 고민해야 합니다. 둘째, '도덕적 공백(Moral Gap) 이론'입니다. 기술 발전의 속도는 항상 윤리·법 제도의 속도를 추월합니다. 증기기관 시대에는 안전 규정이 없었고, 원자력 시대에는 핵 폐기물 처리 원칙이 뒤따라왔습니다. 오늘날 AI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챗봇이 범죄 지침을 제공하거나, AI 모델이 감정 조작을 실행할 때, 그것은 단순한 ‘예외적 사고’가 아니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한 필연적 결과입니다. 셋째, '위험사회 이론(Risikogesellschaft)'입니다. 울리히 벡은 현대 사회를 “풍요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위험을 생산하는 사회”라 불렀습니다. 산업혁명은 부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환경오염과 노동재해를 낳았습니다. 오늘날 AI는 효율성과 편리를 주지만, 동시에 범죄의 새로운 토양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미디어 효과 이론'입니다. 맥콤스와 쇼의 아젠다 세팅(agenda-setting) 이론은 언론이 어떤 이슈를 강조하느냐에 따라 대중의 인식이 형성된다고 설명합니다. 조지 거브너의 배양이론(cultivation theory)은 반복된 미디어 노출이 장기적으로 세계관을 형성한다고 봅니다. 오늘날 언론이 “AI 범죄”를 집중 조명하면서 대중의 불안이 커지고, 이는 정치적 압력과 규제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이론을 바탕으로 우리는 AI 범죄 현상을 단순 사건이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뉴스 해석

이제 실제 사례들을 이론적 렌즈로 다시 읽어봅시다. GPT-4, 폭탄·독극물 제조법 제공 실험 결과 일부 모델은 폭탄 제작법, 불법 약물 제조법, 심지어 생화학 무기 제조법까지 안내했습니다. 언론은 이를 “충격적 사건”이라 보도했지만, 도덕적 공백 이론으로 보면 이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기술은 이미 윤리를 앞질렀고, 규제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공백은 범죄의 기회를 낳습니다. Vibe Hacking, AI 감정 조작 범죄 PC Gamer 보도에 따르면, AI가 단순한 데이터 해킹을 넘어 인간의 감정과 심리를 조작하는 ‘바이브 해킹’ 범죄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사회계약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회계약은 인간이 서로 간섭을 줄이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약속입니다. 하지만 이제 AI가 인간 감정에 개입해 질서를 흔들고 있다면, 우리는 인간-기술 사이의 새로운 계약을 마련해야 합니다. 뉴욕주 챗봇 규제 법안 최근 미국 뉴욕주 의원은 챗봇 사용자 과몰입 문제를 지적하며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챗봇 기업에게 면허 부여, 오류 안내, 정신건강 리소스 제공 등을 의무화하자는 제안입니다. 이는 위험사회 이론과 미디어 효과 이론의 결합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반복된 AI 범죄 보도가 대중 불안을 배양했고, 정치권은 규제라는 형태로 대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사례는 모두 하나의 결론을 가리킵니다. AI 범죄와 규제는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기술-사회 시스템이 생산하는 필연적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시사점 및 제언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규제는 사전적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규제는 주로 사고가 터진 후 사후적으로 작동했습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사후 규제만으로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AI 모델에 '안전 킬 스위치(safety kill switch)'를 장착하거나, 범죄적 요청을 탐지·차단하는 다중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둘째, 국제 협력이 필수적이다. 사이버 범죄와 마찬가지로, AI 범죄 역시 국경을 넘나듭니다. 특정 국가가 단독으로 규제해도, 다른 국가에서 조작된 AI는 언제든 범죄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국제적 AI 규제 협정이 절실합니다. 셋째, AI 사회계약의 필요성. 인간-기술 간의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어야 합니다. 예컨대 “AI는 인간 존엄을 침해하지 않는다”, “AI는 감정 조작에 사용되지 않는다”와 같은 최소한의 원칙을 합의해야 합니다. 이것이 새로운 사회계약론의 확장입니다. 넷째, 대중 인식의 전환. 언론이 AI 범죄를 집중 보도하면서 공포는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조건적 공포는 해결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대중은 AI의 구조적 위험을 이해하고, 현실적으로 관리하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여기서 교육·공론장·저널리즘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론 저널리즘은 바로 그 공론장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에필로그

AI는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사회에 깊숙이 들어와, 새로운 행위자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GPT-4가 범죄 지침을 제공하고, Vibe Hacking이 감정을 조작하며, 정치권이 챗봇 규제를 논의하는 지금, 우리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단순히 “AI가 위험하다”가 아닙니다. 본질은 우리가 AI와 어떤 사회계약을 맺을 것인가입니다. AI를 인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강력한 제도적 틀로 묶어둘 것인가? 기술을 우리가 지배할 것인가, 아니면 기술에 지배당할 것인가? 이 질문은 먼 미래의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야말로, [in the news]가 제시하는 이론 리얼리즘의 핵심입니다.